떠오르는 중국의 새 물결이 미국의 패권을 뒤흔들며 동아시아에 격랑이 일고 있다.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에 대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신형 대국관계’ 요구와 ‘주동작위’(할 일을 주도적으로 한다)의 강한 행보로 응수하고 있다.
동중국해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 갈등에 이어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석유 시추 강행과 베트남의 반발, 일본 아베 정권의 집단적 자위권 추진, ‘아시아 안보는 아시아인이 맡는다’는 시진핑 주석의 선언까지 2차대전 이후 미국 중심의 질서는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동아시아의 새 질서는 어떤 모습이 될까. 각국의 전략을 심층분석했다.
동·남중국해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바다다. 포화만 없을 뿐 전쟁을 방불케 하는 각국의 치열한 주도권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의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 선포(2013년 11월), 중국의 남중국해 석유시추를 둘러싼 베트남과의 갈등(2014년 5월) 등 대형 사건들이 해묵은 영유권 분쟁에 기름을 붓는 형국이다. 26일엔 중국이 석유시추중인 남중국해 해역 근처에서 중국 어선과 충돌한 베트남 어선이 침몰하면서 양국이 서로를 비난하고 나섰다. 이처럼 동아시아의 바다가 들끓게 된 배경에는 유일한 슈퍼파워로 군림해온 미국과 부상하는 도전자 중국의 주도권 다툼이 자리하고 있다.
■ 팽창하는 중국, 막는 미국, 창과 방패의 대결 미국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집권 2기를 맞아 세계 전략의 중심을 동아시아에 두는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채택했다.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발을 빼면서 중국 견제에 전략의 초점을 맞췄다. 지난달 한국을 비롯해 일본,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을 순방한 오바마 대통령은 동맹 강화를 외치며 중국에 압박을 가했다.
중국 역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선언한 시진핑 국가주석이 지난해 취임한 이후 미국에 ‘신형대국관계’를 내세우며 ‘힘 대 힘의 대결’을 주저하지 않고 있다. 이달에는 러시아와 401조원 규모의 초대형 천연가스 계약을 체결하는 등 미국 견제를 염두에 둔 ‘중-러 밀월’ 시대를 열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러가 사실상 동맹에 준하는 관계를 맺었다”고 지적한다. 시진핑 주석은 최근 상하이에서 연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ICA)에서 “안보를 비롯한 아시아의 문제는 아시아인들이 직접 처리해야 한다”며 미국을 향해 ‘아시아에서 손을 떼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중국의 대외 전략이 덩샤오핑 시대의 ‘도광양회’(실력을 감추고 몰래 힘을 키운다)에서 ‘주동작위’(국면에 주도적으로 나선다)로 바뀌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미-중 양국이 상대의 핵심 외교전략을 불신한다는 점이다. ‘기존 강대국과 신흥 강대국이 서로의 핵심 이익을 존중하며 충돌 없이 상생하자’는 중국의 ‘신형대국관계’ 주장을, 미국은 중국이 팽창을 추구하며 미국과 맞먹으려는 선언으로 해석한다. 중국 역시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아시아에서 부상하는 자국의 발목을 잡겠다는 전략으로 이해한다. 강경한 현실주의 외교 전문가인 옌쉐퉁 칭화대 현대국제관계대학원장은 “중-미는 거짓 친구 관계”라고 말한다.
■ 중국 안전보고서 “미국이 중국 해양안전 위협” 중국 외교부 산하 국제관계학원의 국제전략·안전연구센터가 이달 펴낸 ‘2014 중국 국가안전연구 보고’는 테러와 함께 동아시아 갈등을 주요 위험 요소로 꼽았다. 특히 해상 영유권 갈등에 대해 “충돌 모순 격화”, “잠재적 위험 증가”라는 표현으로 우려를 표했다.
보고서는 일본에 대해 “아베 정권 들어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 문제는 뒤로 제쳐둔다는 기존 양국간 인식을 부정하고, 중국이 무력을 동원해 동중국해의 기존 질서를 바꾸려한다는 ‘중국 위협론’ 선전을 강화하고 있다”고 적었다. 아울러 필리핀과 베트남도 남중국해에 군비를 증강시켜 중국에 맞서고 있다고 분석했다. 필리핀이 지난해 7월 5년간 750억페소(1조7500억원)를 들여 군 장비를 현대화하는 계획을 세웠고, 베트남 역시 지난해 러시아 수호이 전투기 도입 계약을 맺고 정식 해군항공부대를 창설했다는 데 주목했다.
보고서는 이런 움직임의 배후를 미국이라고 적시했다. “미국은 중국의 해양안보에 전방위적이고 위협을 주고 있다. 미국이라는 역외세력이 다양한 방식으로 동·남중국해 문제에 개입과 간섭을 강화했다”는 게 중국 쪽 시각이다.
■ 중국의 카드는? 그러나 중국이 당장 동아시아의 분쟁에서 무력 사용 등 강경대응을 할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은 남중국해 석유시추 강행으로 빚어진 베트남의 반중 시위 국면에서 자국민 2명이 숨졌지만 강 대 강 대응은 자제했다. 대신 자국민 철수와 관광 중지, 베트남과의 교류 부분적 중단이라는 경제·외교 압박 카드를 선택했다. ‘국가안전연구보고서’도 “미국에 중국의 핵심이익에 대한 단호한 태도를 설명하는 한편 다양한 군사교류와 소통을 통해 해상 충돌을 피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옌쉐퉁 칭화대 현대국제관계대학원장은 <2023 세계사 불변의 법칙>에서 “일본은 중국과의 갈등을 부각시켜 국제적 위상이 하락하는 속도를 늦추려 하고, 필리핀과 베트남 등도 국내 불만이 커지자 영유권 분쟁으로 관심을 돌리려 하고 있다”며 “10년 뒤인 2023년 중국이 미국과 함께 초강대국이 되면 이들 국가들은 현실을 받아들이게 돼 해양 분쟁이 지금처럼 민감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그 전까지 향후 10년간은 미국과 중국이 전략적 경쟁을 첨예하게 벌이면서, 이 지역의 군비지출 역시 급격히 증가하고, 동아시아 영유권 분쟁 역시 지속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베이징/성연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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