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문사태 25주기 앞둔 중국
지식인·시민·외신기자 구금 등
공안당국 관련 언급 철통봉쇄
공직자 부패개혁·언론자유 등
25년전 요구 대부분 이행안돼
취임초 ‘개방적’ 기대 얻었던
시진핑도 천안문 재평가 안할듯
지식인·시민·외신기자 구금 등
공안당국 관련 언급 철통봉쇄
공직자 부패개혁·언론자유 등
25년전 요구 대부분 이행안돼
취임초 ‘개방적’ 기대 얻었던
시진핑도 천안문 재평가 안할듯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말하는 것은 금기다.”
천안문(톈안먼) 사건 25주기를 일주일 앞둔 29일, 베이징 시민 몇명에게 이 사건에 대한 생각을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중국 사회는 고요해 보인다. 1989년 6월4일 일어난 당시의 사건과 관련된 어떤 공개적인 언급이나 집회의 움직임도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한꺼풀 아래선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침묵의 이면엔 중국 당국의 철통 봉쇄와 단속이 똬리를 틀고 있다. 이미 지난 2~3월께부터 인권활동가와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가택연금과 연행이 시작됐다. 당국은 5월 초 베이징의 한 가정집에 모여 천안문 사태에 대해 토론하던 지식인들을 체포하고 신문했다. 인권변호사인 푸즈창과 쉬유위 사회과학원 연구원 등 참석자들에겐 공공질서 문란 혐의를 적용했다. 이들의 동료들은 “어떻게 민가 안에서 진행한 토론회가 공공질서를 문란하게 할 수 있느냐”며 이의를 제기했지만, 이들이 6월4일 이전에 풀려날 가능성은 요원하다. 공안 당국은 아예 성가실 법한 지식인들을 베이징에서 쫓아버리는 방법도 취하고 있다.
당국의 탄압은 지식인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도 무작위로 미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27일 “공장 노동자인 류웨이가 지난 17일 천안문 광장에서 손가락으로 브이(V)자 표시를 하고 찍은 사진을 인터넷에 올렸다가 공안에 연행됐다”고 보도했다. 베이징에서 열릴 예정이던 동성애자 등 성적 소수자와 사회운동 단체들의 모임 등 천안문 사태와 관련 없는 집회들마저도 금지됐다.
외국 언론도 경고를 받고 있다. 푸즈창 변호사의 인터뷰를 도운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의 중국인 취재 보조원 신젠이 13일 공공질서 문란죄로 체포했다. 일부 외신기자들은 민감한 사안을 취재하면 ‘심각한 결과’를 당할 것이란 경고를 받았다. 중국 공안 당국은 천안문 광장을 취재하려면 취재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허가가 나올리 만무한 탓에 사실상 취재는 엄격히 금지돼 있다. 무수한 감시카메라와 정·사복 경찰들이 광장 안의 사람들을 살피고 있다. 지난 2월부터 가택연금 상태인 인권운동가 후자는 27일 <뉴욕타임스>에 “계절은 봄이지만 베이징은 겨울 같다. 올해는 특히 더 민감하다. 당국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25년 전 중국을 뒤흔든 천안문 시위는 개혁개방의 모순과 후유증이 누적돼 터져나왔다. 덩샤오핑이 1978년 개혁개방 노선을 선언한 뒤 중국은 거의 매년 10%를 훌쩍 넘는 성장을 기록했지만 이 과정에서 빈부 격차, 두자릿수에 이르는 물가 상승, 당 고위 간부와 가족들의 폭리와 부패, 범죄 증가 등 모순도 함께 곪아갔다.
1980년대 중반부터 대학가에서 고조되던 민주화와 개혁 요구는 1989년 4월15일 지식인들을 옹호하고 학생들의 지지를 받던 개혁파 후야오방 전 총서기의 갑작스런 죽음을 도화선으로 천안문 광장의 대규모 시위로 번졌다. 학생들은 후야오방 복권, 당 지도층 재산공개, 언론 자유 등 7개항의 요구를 내걸고 천안문 광장에 모여들었다. 시위가 6월까지 계속되는 동안 한때 최고 100만명이 넘는 학생, 시민, 노동자들이 참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덩샤오핑 등 공산당 원로들은 계엄령으로 시위를 진압했다.
25년이 흐른 지금도 당시의 요구는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았다. 중국이 미국에 버금가는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지만, 정치·사회 개혁은 제자리 걸음이다.
당시 시위 참가자들이 지도층의 부패 척결을 위해 요구했던 고위 공직자 재산공개는 지금도 실현되지 않았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취임 이후 ‘부패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공직자 재산공개 등 제도적 뒷받침은 없어, 시 주석의 권력 강화에 더 방점이 찍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공직자 재산공개 등을 제도화할 경우 부패에서 자유롭지 않은 권력층 자체가 흔들릴 것으로 우려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고위 공직자 재산공개를 내세운 신공민운동의 주동자 쉬즈융은 공공질서 문란 혐의로 4년 형을 선고 받았다. 빈부 격차는 깊어져 소득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 계수는 2013년 중국 당국의 공식 발표로도 위험수준 0.4를 훌쩍 넘은 0.473에 이르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국 지식인은 “6.4 (천안문 사건) 이후 중국 지식인 사회가 위축됐다. 정의감에 불타던 대학생들은 정치개혁에 대해 체념하고 돈을 버는 쪽으로 관심을 돌려버렸다”며 “그 결과 사회 불평등은 날로 심해지고 있다. 우발적인 ‘묻지마 범죄’도 빈부 격차에서 기인한다”고 말했다.
핵심 요구 가운데 하나였던 언론의 자유도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평이다. 한 30대 베이징 시민은 “관영 언론에 나온 보도들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새해 벽두 선전 당국의 검열에 항의해 파업을 벌였던 <남방주말> 사건은 중국 사회의 언론 자유가 여전히 멀다는 것을 방증한다. 중국 당국은 27일부터는 ‘유언비어 단속’을 내세워 중국판 카카오톡인 ‘웨이신’을 한달간 집중 단속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후야오방, 자오쯔양 전 총서기 등 개혁 진영에 섰던 인물들에 대한 재평가와 복권도 아직 없는 상태다. 왕단, 우얼카이시, 차이링 등 당시 천안문 시위 지도자들 역시 대만과 미국 등에서 망명 생활을 하고 있다.
천안문 사건에 대한 재평가는 시진핑 집권시기 동안은 어려울 것이란 회의론도 커지고 있다. 시 주석은 취임 직후인 지난해 4월 서구식 입헌 민주주의, 보편적 인권, 언론 독립 등은 공산당의 집권을 위협하는 7대 사조라고 규정했다. 지난해 8월엔 “인터넷 군대를 조직해 여론전에 승리해야 한다”고 지시하기도 했다. 모두 천안문 사태 당시 학생, 시민들이 요구한 사항들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다.
살릴 셰티 앰네스티인터내셔널 사무총장은 27일 홍콩에서 기자들과 만나 “시 주석이 집권하면 (전임자들보다) 더 개방적인 정책을 펼 것이라 기대했었지만, 여전히 천안문 사건에 관한 토론을 막고 통제를 가하며 개혁을 탄압하고 있다”고 실망감을 나타냈다.
베이징/성연철 특파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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