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안보회의’ 안팎서
비외교적 언사 동원해 맞비난
아베 일 총리도 미국 거들어
아시아서 압도적 우위 보여온 미와
세력 확대 노리는 중의 예견된 충돌
비외교적 언사 동원해 맞비난
아베 일 총리도 미국 거들어
아시아서 압도적 우위 보여온 미와
세력 확대 노리는 중의 예견된 충돌
“정세를 불안정하게 하는 나라” “패권주의자”
미국-일본과 중국이 국제 외교무대에서 보기 드문 거칠고 직설적인 언사로 서로를 비난하며 ‘말의 전쟁’을 벌였다. 1일 싱가포르에서 막을 내린 제13차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는 동아시아의 기존 패권을 지키려는 미국과 국력에 걸맞는 영향력을 확보하겠다는 도전자 중국의 갈등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은 지난달 31일 연설에서 “중국은 최근 여러 달 동안 남중국해에서 자기 주장을 내세우며 안정을 위협하고 일방적인 행동을 해왔다”며 “우리는 영토분쟁에서 한쪽 편을 들지 않지만 위협과 강압, 자기 주장을 밀어붙이려고 무력 시위에 나서는 국가에는 단호히 반대한다”고 말했다. 최근 중국이 베트남과 인접한 남중국해에서 원유 시추를 강행하고, 자국 방공식별구역에 진입한 일본 정찰기에 30m까지 접근해 경고한 사건 등을 겨냥한 것이다. 전날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연설에 나서 “현상을 변화시키려는 움직임은 강하게 비난받을 수밖에 없다. 지금은 평온한 바다를 되찾도록 지혜를 쏟을 때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역시 중국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중국은 바로 맞받아 쳤다. 왕관중 중국 인민해방군 부총참모장은 1일 “헤이글 장관과 아베 총리의 연설은 서로 짜맞춘 듯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 독려하며 중국을 자극했다”고 말했다. 그는 헤이글 장관의 연설에 대해 “패권주의 색채가 짙은 연설”이라고 주장했다. 아베 총리의 연설에 대해서도 “중국을 향해 ‘함사사영(含沙射影·모래를 품고 그림자를 쏜다. 몰래 공격·비방한다는 뜻)하고 있다”고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주권은 기원전 200년 한나라 시대부터 2000여년이 넘는 역사적 기원을 가지고 있다. 1970년대 이후 이곳에 대량의 원유가 매장돼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간 아무 이의도 제기하지 않던 주변국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고 주장했다. 샹그릴라 대화를 주관한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는 “올해 중국 쪽의 발언 강도가 이례적으로 강경했다”고 평가했다.
미·일과 중국의 충돌은 예견된 것이었다. 미국은 4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헤이글 장관의 동아시아 방문 내내 일본, 필리핀 등과의 동맹을 강조하며 중국에 강력한 견제구를 날렸다. 미국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 27개국 국방장관 등이 참석한 샹그릴라 대화에서 미국의 중국 견제 의지와 능력을 강조해 동맹국들을 안심시키려 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중국은 장관급인 푸잉 전국인민대표대회 외사위원회 주임을 단장으로 하는 고위급 대표단을 파견해 중국의 단호한 입장을 강조하며 맞섰다.
미국 언론들은 이번 샹그릴라 대화가 동아시아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보여온 미국의 지위가 도전받고 있음을 보여줬다고 우려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한층 높아진 중국의 발언 수위는 아시아에서 미국의 힘이 약화하고 있다는 중국의 인식을 드러낸 것”이라며 “중국은 최소한 미국과 동등한 세력으로 대우받아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면서 아시아에서 영향력을 유지하려고 하고 있으나 아시아가 길거리 싸움 양상으로 변하고 있다”며 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위협받고 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동남아 국가들의 중국에 대한 경계감이 더욱 커진 측면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참석자는 <비비시>(BBC) 방송에 “지나치게 강경한 중국 쪽의 말보다 아베의 말이 더 설득력이 있었다. 중국이 다른 나라들의 태도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더욱 고립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베이징·워싱턴·도쿄/성연철·박현·길윤형 특파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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