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주석(왼쪽).
집권 내내 반부패 고삐 당겨
고위관료 처벌에 호응 높지만
공직자 재산공개 의무화 등
부패방지 제도화엔 소극적
시 주석에 점점 집중되는 권력에
“기득권층과 싸우려면 불가피”
일부선 묵인하는 여론도
권력강화로 비판 탄압 우려나와
고위관료 처벌에 호응 높지만
공직자 재산공개 의무화 등
부패방지 제도화엔 소극적
시 주석에 점점 집중되는 권력에
“기득권층과 싸우려면 불가피”
일부선 묵인하는 여론도
권력강화로 비판 탄압 우려나와
“시진핑 주석이 잘 하고 있기는 하지만, 가경제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꼭 성공했으면 좋겠습니다.”
베이징의 한 20대 남성은 시진핑(사진) 중국 국가주석이 벌이고 있는 부패 척결 캠페인에 관한 의견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청나라 7대 황제인 가경제는 아버지 건륭제의 총애를 받던 부패한 신하 화신을 처벌했다. 만연한 사치, 부패 풍조를 일소하려는 조처였다. 중국 역사상 최악의 탐관오리로 손꼽히는 화신의 집에서는 당시 10년치 국가 예산에 맞먹는 재물이 쏟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가경제는 화신의 재물을 제대로 국고에 회수하지 못했고, 고질적 부패를 사전에 차단할 제도도 만들지 못했다. 청나라는 쇠퇴의 길로 들어섰다.
시 주석의 ‘제1호 국정과제’라고 할 만한 ‘부패와의 전쟁’을 보는 중국인들의 민심은 대체로 호의적이다. 옌쉐퉁 칭화대 교수는 “향후 10년간 중국 정부가 관료들의 부정부패만 효과적으로 통제한다면 초강대국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한 40대 회사원은 “과거에도 새 지도자가 들어설 때마다 반부패 활동을 벌이곤 했지만 대부분 형식에 그쳤다”며 “그런데 시 주석 들어서는 계속해서 성장급, 부장(장관)급 이상의 고위관료들이 처벌받는 것을 보고 이번에는 정말 다르다고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한 50대 교수도 “부패로 인한 빈부격차는 지금 중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시 주석의 반부패 드라이브는 다수 사람들에게 큰 환영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집권 1년5개월이 지났지만 시 주석은 반부패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중국 언론들은 거의 매일 고위직 낙마 소식을 전하고 있다. 최근 반부패 사정 칼날을 맞은 곳은 산시방(山西幇)이라 불리는 산시성 지역 고위직들이다. 왕치산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지휘하는 중앙기율검사위원회는 22일 “링정처 산시성 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부주석과 두산쉐 산시성 부성장을 면직 조처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11월 이후 산시성에서는 23명의 전·현직 고위 간부들이 무더기로 낙마했다. 형사처벌설이 끊이지 않는 저우융캉 전 정치국 상무위원의 세력기반인 ‘석유방(석유산업을 기반으로 한 정치세력)’, ‘쓰촨방(쓰촨성 출신의 관료 집단)’, ‘비서방(저우융캉의 비서 세력)’ 몰락에 이은 또다른 세력 집단의 몰락인 셈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저우융캉 전 상무위원에 초점이 모아지던 ‘부패 호랑이’의 범위는 넓어지고 있다. 특히 링정처 부주석의 면직은 그가 후진타오 전 주석의 비서실장이던 링지화 통일전선공작부장의 형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그는 ‘산시방’의 대부로 불린다. 링지화 부장은 2012년 아들의 페라리 스포츠카 사고 전까지만 해도 후 전 주석의 지지를 업고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 진입이 유력시 됐으나 고배를 들었다. 링 부장은 저우융캉, 허궈창 전 상무위원과 함께 보시라이 전 충칭시 당서기와 가까웠고, 보시라이의 형사처벌에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허궈창의 아들 허진타오는 국영기업에서 수천만위안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가택연금 상태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 나온다. 딸의 부정 축재 의혹이 끊이지 않는 리펑 전 총리도 사정권 안에 들었다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부패와의 전쟁’의 목적은 우선 부패와 빈부격차 등으로 악화된 민심을 달래 공산당의 정통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시 주석의 권력 공고화라는 정치적 색채도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시 주석의 권력은 나날이 강해지고 있다. 그는 지난해 11월 공산당 18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3중전회) 이후 신설된 전면심화개혁 영도소조, 국가안전위원회, 인터넷영도소조의 조장과 주석직을 모두 맡은데 이어 6월엔 경제정책을 관장하는 중앙재경영도소조 조장 자리도 차지했다. 경제는 총리가 관할한다는 관례를 깨고 군·정치·경제·외교 등의 모든 권한이 시 주석에게 집중됐다.
베이징 정가에선 시 주석이 향후 신설될 ‘문화영도소조’ 조장까지 겸임해 사회 전반의 이데올로기 단속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시 주석이 부패로 낙마한 빈자리를 자신의 측근들로 채우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로이터> 통신은 4월 “시 주석이 반부패 운동으로 공석이 된 고위직 자리에 자신이 믿을 만한 칭화대 출신이나 과거 당 서기를 지낸 저장성 출신의 측근을 배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시 주석의 강화된 권력이 겨냥하는 목표는 무엇이며, 중국 지도부는 왜 시 주석의 권력 집중에 동의하고 있을까?
한 중국 전문가는 “덩샤오핑 이후 30여년에 걸친 개혁개방 과정에서 당·정·군·국유기업 등이 강력한 기득권 집단으로 자리잡았고, 거기서 파생되는 심각한 사회, 경제적 문제들은 웬만한 권위로는 청산할 수 없다는 것이 공산당 원로나 고위층의 공통된 인식”이라며 “압도적인 권한을 가진 강력한 지도자가 있어야만 현재 중국의 심각한 문제를 풀 수 있다는 합의 내지 묵인 하에서 시 주석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그에게 권한을 위임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 베이징 시민은 부패를 진정으로 해결하려면 제도를 확립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언론계에 종사하는 한 40대 시민은 “가장 중요한 것은 부패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제도를 확실히 마련하는 것이다. 공직자 본인과 가족들의 재산공개, 국외 은닉재산 신고를 의무화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강력한 반부패 활동도 한때 지나가는 소나기에 그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제도화와 함께 언론이 상시적으로 부패 관리들을 감시할 수 있도록 기능을 더 보장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분간 중국 당국이 ‘운동식의 반부패’를 넘어 권력 전반을 감시할 반부패 제도를 도입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중국 정부는 공직자 재산공개를 요구한 신공민운동의 지도자격인 쉬즈융 변호사에게 4월 ‘공공질서 교란’ 혐의를 적용해 징역 4년을 선고했다.
과도한 권력 집중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23일 시 주석의 부패 척결이 권력층뿐 아니라 비판적 지식인과 사회활동가들을 옥죄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면서 “시 주석의 부패와의 전쟁이 전제적 통치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누가 부패했고 누가 그렇지 않는지 판단하는 일은 오직 시 주석과 그 측근들의 독점적 권한이다. 시 주석 집권 초기만 하더라도 많은 학자들이 그를 시장개혁의 설계자인 덩샤오핑에 견줬지만 지금은 그가 마오쩌둥과 훨씬 비슷하다고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베이징/성연철 특파원 sychee@hani.co.kr
사진 신화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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