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홍콩 ‘우산혁명’ 시위현장 2신
국경절 행사장 둘러싼 시위대
“렁춘잉 행정장관 물러나라”
중국국기 게양되자 등 돌린채
손으로 ‘가위표’ 만들어 항의
국경절 행사장 둘러싼 시위대
“렁춘잉 행정장관 물러나라”
중국국기 게양되자 등 돌린채
손으로 ‘가위표’ 만들어 항의
1일 아침 8시(현지시각) 렁춘잉 홍콩 행정장관은 국경절 65돌을 기념하는 중국 국기 게양식에 참석했다. 경찰들이 둘러싼 행사장 밖에선 수백명의 시위대가 ‘렁춘잉 물러나라’는 구호를 외쳤다. 17살 학생 지도자 조슈아 웡과 학생들은 중국 국기가 게양되는 동안 등을 돌린 채 노란 리본을 묶은 손을 들어 가위표(×)를 만든 채 침묵시위를 벌였다.
1949년 이날 베이징 천안문광장에서 마오쩌둥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을 선포하며 “중국 인민이 떨쳐 일어났다”고 자랑스럽게 선언했다. 65년이 흐른 이날 중국 정부의 선거 개입에 항의하며 민주를 요구하는 시위대에 둘러싸인 국경절 행사엔 긴장감이 가득했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과 ‘중국의 꿈’을 기치로 대대적인 경축 분위기를 조성하려던 시진핑 지도부 앞에 놓인 곤혹스런 상황을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1일 ‘국경절 만찬’ 시위에는 수십만명의 시민과 대학생들이 밤늦게까지 동참했다. 오후부터 도심으로 이어지는 애드미럴티 지하철역 통로는 시위에 동참하려고 가족과 함께 나온 시민들의 행렬로 붐볐다. 아이와 함께한 부부, 유모차를 끄는 주부, 휠체어를 탄 노인들이 당국이 곳곳에 설치한 ‘국경절 65돌 경축’ 펼침막을 지나 거침없이 몰려들었다. 대부분이 대학생이던 전날 시위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시민들은 항의의 표시인 검은 옷과 희망과 단결의 상징인 노란 리본을 옷깃에 달았다. 한 시민은 “홍콩인들에게 중국의 국경절보다는 크리스마스나 설이 훨씬 중요하다. 국경절은 별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행진이나 대형 앰프를 통한 웅장한 연설도 없는, 무더위 속의 자칫 따분하기까지 한 아스팔트 점거 시위였지만 참가자들은 “우리에겐 반드시 쟁취해야 할 민주가 있다. 이 정도 더위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홍콩은 외롭지 않다” 펼침막…외국인도 지지·동참
한 시위 참여자는 “오늘 40만~50만명이 모일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중심지인 센트럴 지역 말고도 대표적 상업지구인 홍콩섬 북부 침사추이까지도 시위가 확산됐다. 시위대는 프랑스 혁명을 다룬 영화 <레 미제라블>의 주제가를 함께 불렀다. 60대 여성 저우는 “이번 사태는 중국과 홍콩의 관계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정부와 인민의 관계를 묻고 있다. 우리는 한국을 본보기로 삼고 있다. 한국도 20여년 전 시민들이 군사정권을 몰아내지 않았느냐”고 했다.
중국 현 지도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사회복지사인 폴 로(60)는 “현 시진핑 지도부가 덩샤오핑이 일찍이 이야기한 고도자치를 원칙으로 하는 기본법 정신을 완전히 오도하고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 중국 정부는 홍콩이 자율권을 가지게 되면 중국 내 각 성과 대만에서도 이런 요구가 일어날까봐 겁을 먹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시민도 “일국양제(중국의 홍콩 통치 원칙인 한 국가 두 체제)를 깬 것은 우리가 아니라 약속을 지키지 않은 중국 정부다. 우리는 정당한 항의를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중국 당국의 강경진압으로 제2의 천안문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금융 중심지 홍콩의 위상과 언론의 자유를 누리는 홍콩 사회의 개방성에 자신감을 보였다. 한 시위 참가자는 “홍콩은 완전한 언론자유가 있다.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면 대번에 모든 사람이 다 알게 된다. 언론이 통제되는 중국과는 다르다”며 “게다가 중국은 천안문 사태 이후 받은 국제 제재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집회에는 홍콩 노동조합과 일부 외국인들도 동참했다. 17만여 회원이 가입한 독립노동조합 연맹인 홍콩직공회연맹(공맹)의 덩옌어 전 총간사는 “2011년 중동의 재스민혁명 성과도 하루이틀 만에 이뤄지진 않았다. 우리도 길게 보고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시위를 응원하려고 일부러 1박2일 일정으로 대만에서 날아왔다는 천아무개는 “홍콩은 대만의 본보기다. 중국의 홍콩 장악 의도를 막지 못하면 친중국 성향의 마잉주 총통이 집권하고 있는 대만의 미래도 어둡다”고 말했다. 시위대 한켠에서는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노란 셔츠를 입은 채 “홍콩은 외롭지 않다”는 펼침막을 들고 집회를 벌였다.
민주화 열망 속에서도 시위대는 철저히 평화와 질서를 강조하고 있다. 일부 친중국계 시민은 시위대에 항의하며 썩은 달걀을 던지기도 했지만, 시위대는 부닥치지 않은 채 비폭력 불복종운동 원칙을 고수했다. 시위대는 곳곳에 일반 쓰레기와 과일껍질, 플라스틱, 캔류 등으로 나눠 철저히 분리수거를 했다. 거리에서는 쓰레기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여론의 압박은 커지고 있지만 중국 지도부는 여전히 강경하다. 시 주석은 지난 30일 저녁 장쩌민·후진타오 전 주석 등 전·현직 지도부가 총출동한 가운데 국경절 축하 행사에 참석해 중국 공산당과 지도부의 단결된 입장을 과시했다. 그는 홍콩 시위 사태를 염두에 둔 듯 “‘일국양제’를 부단히 추진하는 것은 국가의 근본 이익과 홍콩·마카오의 장기적 이익에 들어맞는다”고 했다. 당국이 정한 행정장관 선거방식을 시위대가 존중할 것을 요구하면서 양보할 뜻이 없음을 시사한 것이다.
검열이 강화되면서 중국 내 언론과 인터넷에선 홍콩 시위 사진과 소식 등은 차단돼 있다. 대신 중국 관영언론들은 홍콩 시위가 극단주의자들의 폭력적 행위라며, 외부세력들의 사주를 받고 있다는 식의 보도를 내보내고 있다.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은 30일 밤 메인뉴스에서 홍콩 시위가 증시, 부동산, 관광, 일상생활에 심각한 지장을 주고 있어 경제적 손실이 최소 400만달러에 이른다며 ‘홍콩 경제 타격론’을 강조했다. 그러나 한 홍콩 시민은 이에 대해 ‘사람은 배만 채운다고 되는 게 아니다. 우리에겐 배만 부르면 되는 동물과 달리 생각할 수 있는 머리와 뜨거운 가슴이 있다”고 일축했다.
홍콩/성연철 특파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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