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건국기념일(국경절)을 맞은 1일 밤 홍콩 중심가의 정부청사 앞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렁춘잉 행정장관의 퇴진과 민주화를 요구하며 도심 점거 시위를 벌이고 있다.
홍콩/블룸버그 연합뉴스
관영 ‘인민일보’ 1면 사설로 비난
버티기 돌입하며 여론몰이 시작
시위 참가자 감소…지도부 ‘고민
버티기 돌입하며 여론몰이 시작
시위 참가자 감소…지도부 ‘고민
홍콩의 대규모 도심 점거 시위는 2일에도 닷새째 계속됐지만, 중국과 홍콩 정부는 시위대의 요구에 꿈쩍도 하지 않고 시위가 사그라지기를 기다리는 ‘버티기 작전’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시위대도 ‘지구전’을 펼칠 태세이나, 참가자는 전날보다는 부쩍 줄어들었다. 앞으로 시위의 동력이 유지될지가 관건이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2일 일제히 홍콩 시위대를 비난하며 여론몰이를 시작했다. <인민일보>는 1면 사설에서 “불법 집회가 홍콩의 사회질서와 법치를 깨고 인민들의 생활을 방해하고 있다”며 “소수가 사리사욕으로 민심을 왜곡하고 홍콩의 경제 번영을 뒤흔들고 있다”며 ‘홍콩 경제 타격론’을 들고나왔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의 이 사설은 중국 지도부가 시위대의 요구에 단호한 거부의 뜻을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사설은 렁춘잉 홍콩 행정장관에 대한 지지를 강조하며, 시위대의 렁 행정장관 사임 요구도 일축했다. 모지훙 중국사회과학원 법학연구원 부소장도 이 신문에서 “홍콩 시위의 배후에는 서방의 검은손과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며 ‘서방 개입 음모론’을 제기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1일 홍콩 정계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과 홍콩 지도부가 시간끌기와 여론전을 통해 시위대의 동력이 스스로 약화되길 기다리는 새 전략을 취했다”며 “중앙정부가 이미 렁춘잉 행정장관에게 무력 동원 없이 사태를 마무리하라는 지시를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또다른 소식통은 “정부 쪽은 시위로 인한 경제적 피해와 교통 불편 등을 부각해 여론이 시위대에 등을 돌리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날부터 도심 점령 시위에 반대하는 친중국 인사들이 시내 곳곳에 파란 리본을 달고 집회를 벌이기도 했다. 시위대의 상징인 노란 리본에 맞선 상징 싸움이다.
중국 당국으로선 1989년 천안문시위 유혈진압의 상흔이 남아 있는데다, 지난달 29일 홍콩 경찰의 최루탄 발사가 외려 사태를 키웠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홍콩 경찰은 평상복 차림으로 교통정리 정도만 할 뿐 사실상 시위를 방치하다시피 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7일까지인 국경절 연휴 동안 중국인들의 홍콩 단체관광을 통제하는 압박 조처도 취했다. 중국인들이 홍콩 민주화 시위를 지켜보는 것을 차단하는 한편, 홍콩 경제의 큰 몫을 차지하는 관광수입의 돈줄을 죄려는 것으로 보인다. 홍콩 방문객의 75%는 중국인이며, 이 중 단체관광객은 33%를 차지한다.
정부의 이런 방침을 감지한 시위대도 대책을 고민하고 있다. 홍콩대생 류아무개는 “우리도 시위가 길어지면 생활에 불편을 느끼는 시민들의 반대 여론이 높아질 것을 안다”며 “우리도 혼란이 아닌 대화가 목적임을 강조하는 여론전을 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도심 점거 시위를 주도한 시민단체 ‘센트럴을 점령하라’의 지도부 격인 찬킨만 전 홍콩중문대 교수도 “우리도 속히 렁춘잉 행정장관이 사임해 집회를 끝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렁춘잉 행정장관이 2일까지 퇴진하지 않으면 정부기관 점령에 나서겠다”고 밝힌 대학생 단체들은 이날 계획 실행을 유보하고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대학생 단체 쪽은 “정부 청사 점령은 주변 포위이지, 건물 내로 진입해 점거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라며 충돌을 최대한 피하겠다는 뜻을 보였다. 스티브 후이 홍콩 경찰 대변인은 이날 “시위대가 정부 건물을 점거하거나 포위하면 심각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시위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대학생들은 “시민들이 이미 자발적으로 모여들고 있다. 누가 ‘해산하라, 마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거리에서 만난 많은 시민들도 “우리 요구는 민주선거 쟁취다. 계속 거리에 나오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위대 일부에선 시간이 우리 편이 아니라는 초조함도 읽힌다. 2일 밤 시위대 규모는 전날보다 줄어 군데군데 빈 공간도 눈에 띄었다. 홍콩대 학생 조안 웡은 “정부가 아무 응답이 없는 것은 운동 동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우리는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콩/성연철 특파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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