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오바마 미국 대통령.
시진핑 체제 2년…미국-중국 ‘그레이트 게임’
지난해 6월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휴양지 서니랜즈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노타이에 흰 와이셔츠 차림의 버락 오바마(왼쪽 사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은 이곳에서 이틀 동안 의전에 구애받지 않고 격의없는 대화를 나눴다. 회담 뒤 “새로운 양국 관계의 주춧돌을 놨다”는 장밋빛 전망들이 나왔다.
12일 중국 베이징 외곽 옌치 호숫가에서 두 번째 정상회담을 앞둔 두 강대국 지도자의 관계는 1년 반 전과 사뭇 다르다. “서로 충돌하지 않고 이익을 존중한다”는 이른바 ‘신형대국 관계’는 자취를 찾기 어렵다. ‘시(習)황제’로 불릴 정도로 강력한 리더십을 보이고 있는 시진핑 주석은 미국과의 정면대치를 꺼리던 전임자들과 달리, 외교 분야에서도 갈등을 불사하고 국익을 적극적으로 실현한다는 ‘주동작위’(主動作爲)를 내세우면서 미국의 기존 주도권에 도전하고 있다. 오는 15일로 집권 2주년을 맞는 시 주석의 등장 이후 동아시아는 ‘현상 변경’을 시도하는 중국의 ‘창’과 이를 막으려는 미국의 ‘방패’ 대결의 여파로 출렁이고 있다.
12일 오바마-시진핑 두번째 회담
작년 화기애애한 분위기와 달라
“아시아 문제는 아시아인이 처리”
중, 미국의 기존 주도권 도전 ■ 동아시아 둘러싼 ‘그레이트 게임’ 지난해 6월 말 홍콩에서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전세계적 무차별 정보수집을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의 신병 인도 문제를 놓고 신경전을 벌인 양국은 11월 중국이 전격적으로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한 뒤 가파른 대립구도로 치달았다. 시 주석이 강조하는 중국의 ‘해양·군사 강국’ 꿈이 이를 통해 구체화됐고, 미국은 이를 중국이 동북아에서 미국 주도의 기존 질서를 흔들며 새판을 짜려는 선제 포석으로 간주하고 반발했다. ‘아시아 재균형 전략’으로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은 올봄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면서 미-일 동맹 강화 움직임을 뚜렷이 하고 있다. 4월 일본을 방문한 오바마 대통령은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가 미-일 안보조약의 범위에 포함된다”고 말했다. 일본을 앞세워 날로 팽창하는 중국의 군사력을 견제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해묵은 센카쿠열도 갈등으로 중-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던 상황에서 미국의 ‘일본 편들기’는 중국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급기야 5월, 중국은 안방인 상하이에서 미국의 행보에 강한 견제구를 던진다. 시 주석은 아시아교류·신뢰구축회의(CICA)에서 “아시아의 일과 문제는 아시아인들이 직접 처리해야 하고 아시아의 안보 역시 아시아인들이 수호해야 한다”며 아시아안보협력기구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과거 영국의 간섭을 배척한 미국의 먼로주의를 중국이 그대로 차용해, 미국의 아시아 개입에 대한 반대를 선언한 것이다. 미, 한국과 일본과의 공조 강화 등
‘아시아 재균형 전략’으로 견제
동아시아 패권 둘러싸고
중국의 ‘창’과 미국의 ‘방패’ 팽팽 ■ 노골화한 경제 주도권 경쟁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경제적 주도권을 쥐려는 치열한 공방전도 이어지고 있다. 중국은 10~11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2025년까지 아·태 자유무역지대(FTAAP) 구상을 실현한다는 목표를 밀어붙이려 한다. 중국 상무부는 “아펙 회의에서 아·태 자유무역지대의 구체적 완성 로드맵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아태 지역에 중국의 경제권 주도권이 확대되는 것을 꺼리는 탓이다. 미국은 이미 지난달 중국이 주도한 아시아인프라개발은행(AIIB) 양해각서 체결에 한국과 오스트레일리아가 참여하는 걸 막았다. 대신 미국은 지식재산권과 노동, 환경권 등 중국이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을 요구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공을 들이고 있다. ■ 사드의 함정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 체계)의 한국 배치 문제는 미-중의 아시아 주도권 신경전에서 가장 민감한 암초로 변하고 있다. 미-중 관계뿐 아니라 한-중 관계도 뒤흔들 수 있는 사안이다. 사드는 미국이 주도하는 미사일 방어체계(MD)의 일환으로 최대 반경 4800㎞까지 탐지가 가능한 엑스(X)밴드 레이더가 핵심이다. 이에 대해 왕융 베이징대 국제정치경제연구센터 주임은 “사드가 한국에 배치되면 베이징과 톈진을 비롯한 중국의 수도권과 보하이만을 비롯한 동북부 지역이 모두 미국에 노출된다”고 말했다. 한국과 미국은 공식적으론 “사드 문제에 관해 어떤 결정이나 협의도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면 논의 여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5월 중국 외교부의 친강 대변인은 “아시아의 전략적 균형에 도움이 안 된다”며 한반도 사드 배치를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시진핑 주석도 7월 한-중 정상회담 당시 박근혜 대통령에게 “신중하게 문제를 처리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 공세적 시진핑, 수세 오바마 미-중이 기존 강대국과 신흥 강대국 간 충돌이라는 역사적 전철을 밟게 될지 여부에는 시진핑, 오바마 두 지도자의 리더십 스타일도 변수다. 시 주석은 18만명의 부패 공무원을 낙마시킨 강력한 반부패 드라이브로 정통성을 강화하고 10여개에 이르는 핵심 조직의 1인자 자리에 스스로 올라 ‘1인 독주 체제’를 갖춰가고 있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강조하며 적어도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중국의 영향력을 확보하겠다는 공격적인 외교정책도 이어갈 전망이다. 반면 중간선거에서 참패해 여소야대 정국을 맞은 오바마 대통령은 조기 레임덕이 거론될 정도로 내정이 뒤숭숭하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무른 대응, 이슬람국가(IS) 대책 실패 등 대외정책이 패인의 하나로 꼽히는 상황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오히려 ‘강한 외교정책’으로 반전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동아시아를 둘러싼 G2 경쟁의 파도는 더 높아질 것 같다. 베이징/성연철 특파원 sychee@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작년 화기애애한 분위기와 달라
“아시아 문제는 아시아인이 처리”
중, 미국의 기존 주도권 도전 ■ 동아시아 둘러싼 ‘그레이트 게임’ 지난해 6월 말 홍콩에서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전세계적 무차별 정보수집을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의 신병 인도 문제를 놓고 신경전을 벌인 양국은 11월 중국이 전격적으로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한 뒤 가파른 대립구도로 치달았다. 시 주석이 강조하는 중국의 ‘해양·군사 강국’ 꿈이 이를 통해 구체화됐고, 미국은 이를 중국이 동북아에서 미국 주도의 기존 질서를 흔들며 새판을 짜려는 선제 포석으로 간주하고 반발했다. ‘아시아 재균형 전략’으로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은 올봄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면서 미-일 동맹 강화 움직임을 뚜렷이 하고 있다. 4월 일본을 방문한 오바마 대통령은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가 미-일 안보조약의 범위에 포함된다”고 말했다. 일본을 앞세워 날로 팽창하는 중국의 군사력을 견제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해묵은 센카쿠열도 갈등으로 중-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던 상황에서 미국의 ‘일본 편들기’는 중국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급기야 5월, 중국은 안방인 상하이에서 미국의 행보에 강한 견제구를 던진다. 시 주석은 아시아교류·신뢰구축회의(CICA)에서 “아시아의 일과 문제는 아시아인들이 직접 처리해야 하고 아시아의 안보 역시 아시아인들이 수호해야 한다”며 아시아안보협력기구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과거 영국의 간섭을 배척한 미국의 먼로주의를 중국이 그대로 차용해, 미국의 아시아 개입에 대한 반대를 선언한 것이다. 미, 한국과 일본과의 공조 강화 등
‘아시아 재균형 전략’으로 견제
동아시아 패권 둘러싸고
중국의 ‘창’과 미국의 ‘방패’ 팽팽 ■ 노골화한 경제 주도권 경쟁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경제적 주도권을 쥐려는 치열한 공방전도 이어지고 있다. 중국은 10~11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2025년까지 아·태 자유무역지대(FTAAP) 구상을 실현한다는 목표를 밀어붙이려 한다. 중국 상무부는 “아펙 회의에서 아·태 자유무역지대의 구체적 완성 로드맵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아태 지역에 중국의 경제권 주도권이 확대되는 것을 꺼리는 탓이다. 미국은 이미 지난달 중국이 주도한 아시아인프라개발은행(AIIB) 양해각서 체결에 한국과 오스트레일리아가 참여하는 걸 막았다. 대신 미국은 지식재산권과 노동, 환경권 등 중국이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을 요구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공을 들이고 있다. ■ 사드의 함정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 체계)의 한국 배치 문제는 미-중의 아시아 주도권 신경전에서 가장 민감한 암초로 변하고 있다. 미-중 관계뿐 아니라 한-중 관계도 뒤흔들 수 있는 사안이다. 사드는 미국이 주도하는 미사일 방어체계(MD)의 일환으로 최대 반경 4800㎞까지 탐지가 가능한 엑스(X)밴드 레이더가 핵심이다. 이에 대해 왕융 베이징대 국제정치경제연구센터 주임은 “사드가 한국에 배치되면 베이징과 톈진을 비롯한 중국의 수도권과 보하이만을 비롯한 동북부 지역이 모두 미국에 노출된다”고 말했다. 한국과 미국은 공식적으론 “사드 문제에 관해 어떤 결정이나 협의도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면 논의 여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5월 중국 외교부의 친강 대변인은 “아시아의 전략적 균형에 도움이 안 된다”며 한반도 사드 배치를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시진핑 주석도 7월 한-중 정상회담 당시 박근혜 대통령에게 “신중하게 문제를 처리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 공세적 시진핑, 수세 오바마 미-중이 기존 강대국과 신흥 강대국 간 충돌이라는 역사적 전철을 밟게 될지 여부에는 시진핑, 오바마 두 지도자의 리더십 스타일도 변수다. 시 주석은 18만명의 부패 공무원을 낙마시킨 강력한 반부패 드라이브로 정통성을 강화하고 10여개에 이르는 핵심 조직의 1인자 자리에 스스로 올라 ‘1인 독주 체제’를 갖춰가고 있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강조하며 적어도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중국의 영향력을 확보하겠다는 공격적인 외교정책도 이어갈 전망이다. 반면 중간선거에서 참패해 여소야대 정국을 맞은 오바마 대통령은 조기 레임덕이 거론될 정도로 내정이 뒤숭숭하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무른 대응, 이슬람국가(IS) 대책 실패 등 대외정책이 패인의 하나로 꼽히는 상황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오히려 ‘강한 외교정책’으로 반전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동아시아를 둘러싼 G2 경쟁의 파도는 더 높아질 것 같다. 베이징/성연철 특파원 sychee@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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