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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국

중국 개혁개방 반대 좌파이론가 덩리췬 사망

등록 2015-02-11 19:54

덩리췬 전 중국공산당 중앙선전부장
덩리췬 전 중국공산당 중앙선전부장
덩샤오핑 때 중앙선전부장
1980년대 중국의 대표적 좌파 보수이론가로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노선에 맞서며 ‘좌왕’(左王)이라 불렸던 덩리췬(사진) 전 중국공산당 중앙선전부장이 10일 노환으로 숨졌다. 향년 100.

1915년 후난성 구이둥의 부농 집안에서 태어난 덩리췬은 베이징대 경제학과에 입학한 뒤 1년 만에 공산당 근거지인 옌안으로 가 입당했다. 이후 류샤오치 전 주석의 비서로 일한 그는 좌파 당 기관지 <홍기> 부편집장을 맡기도 했다. 문화대혁명 시절 반혁명분자로 몰려 하방 생활을 했으나 복권됐다. 덩샤오핑 집권 뒤 1982년부터 1985년까지 중앙선전부장으로 일한 그는 덩샤오핑의 급속한 개혁개방 노선에 관해 “자본주의로 인한 정신 오염의 우려가 있다”고 비판하며 당의 규율과 계획경제를 강조했다. 그는 “시장이란 새는 계획이라는 새장 안에 있어야 한다”며 계획 경제를 주창한 천윈을 필두로 한 보수파의 대변인 구실을 했다. 특히 급진적인 개혁개방과 언론자유 등을 추진했던 동갑내기 후야오방 전 총서기와는 내내 대척점에 섰다. 덩리췬은 후야오방이 자유를 지나치게 허락하고 있고, 당의 권위를 허물어뜨리고 있다고 여기며 멸시했다. 중국 전문가들은 덩리췬이 1987년 후야오방 실각 배후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평가한다.

<덩샤오핑 평전>을 쓴 에즈라 보겔은 “자유를 제창한 중국 지식인들은 덩리췬이 원로 간부들을 부추겨 자유를 억압하는 역할을 했다. (악명을 떨친 공안기관과 정보기관의 수장이던) 캉성이 죽은 뒤 지식인과 자유파 관리들이 가장 증오한 사람이 덩리췬이었다”고 적었다.

중국 정부는 10일 그의 사망을 발표하며 “우수한 당원이자 충성스런 공산주의 전사, 사상이론 전선의 걸출한 지도자였다”고 추어올렸다. 이런 높은 평가는 시진핑 주석 집권 뒤 사상과 이념을 통제하고 있는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베이징/성연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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