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내 보혁·세대 갈등 더 심해질듯
홍콩의 의회 격인 입법회가 18일 중국이 결정한 2017년 행정장관 선거안을 부결시켰다. 중국은 홍콩의 반중 정서에 부딪혀 상당한 통치력 상실을 감수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홍콩 역시 친중파와 민주파 간의 갈등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입법회는 이날 정오께 행정장관 선거안을 표결에 부쳐, 전체 70명 의원 가운데 37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8, 반대 28, 기권 1표로 선거안을 부결시켰다. 친중국계로 분류되던 의원 30여명은 표결에 불참했다. 이들은 정족수 미달을 노리고 본회의장에서 퇴장했지만 소통 부족 탓에 일부가 투표에 참여하며 표결이 진행됐다.
행정장관 선거안은 70명의 입법회 재적의원 중 3분의 2 이상인 47명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통과할 수 있었다. 선거안이 16일 입법회에 제출될 때부터 범민주파 성향 의원 27명이 완강한 반대 의사를 표시해 통과 전망이 낮았다. 표결 직후 범민주파의 앨런 렁 의원은 “선거안 부결은 진정한 자유선거를 원하는 홍콩 시민들의 뜻을 베이징에 명확히 보여준 것”이라며 “민주화운동은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 시작됐다”고 말했다.
앞서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는 지난해 8월 ‘2017년 행정장관 선거부터 직선제를 도입하되, 1200여명으로 구성된 행정장관 후보 추천위원회의 과반 지지를 얻은 2~3명만 입후보할 수 있다’는 선거안을 결정했다. 홍콩에서는 이에 반발해 완전 직선제를 요구하는 우산 시위가 지난해 9월 말부터 79일 동안 벌어지기도 했다. 이번 선거안이 부결됨에 따라 2017년 홍콩 행정장관 선거는 친중 기득권층으로 꾸려진 1200명 선거인단의 간접투표와 중국 중앙정부 승인이라는 기존 절차대로 진행된다.
행정장관 선거안 부결로 중국 정부와 홍콩 민주화 세력 양쪽 모두 적잖은 정치적 부담을 지게 됐다. 중국 정부로서는 비록 차기 행정장관 선거에서 친중계 행정장관을 앉힐 수 있기는 하지만, 전인대 의결까지 거친 선거안이 부결될 만큼 깊어진 홍콩의 반중 정서를 해결해야 하는 녹록잖은 과제를 떠안았다. 루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보고 싶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관영 <차이나 데일리>는 평론에서 “선거안 부결은 질서있는 민주주의 과정에서의 명백한 후퇴”라고 비판했다.
홍콩 민주화 세력 역시 국내외에 강렬한 민주화 열망은 알렸지만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직선제를 거부했다는 비판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는 “선거안 부결로 향후 몇년 동안 민주화 논의가 중단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장추융 홍콩시립대 교수는 “범민주파들은 부결 소식이 기쁘겠지만, 홍콩의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는 데는 도움 될 게 없다”며 “베이징 정부가 태도를 누그러뜨릴 여지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홍콩 내부적으로는 기득권층인 친중파와 반중 정서가 강한 젊은 세대 사이의 보혁, 세대 갈등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부결 소식이 전해지자 입법회 청사 주변에서 선거안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시위를 벌이던 시민 수백명의 반응도 극명하게 갈렸다. “선거안은 무늬만 직선제”라며 반대해온 민주화 요구 세력들은 환호했다. 반면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바뀌는 것만 해도 큰 진전”이라고 주장해온 찬성 세력들은 망연자실했다.
베이징/성연철 특파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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