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인민해방군 육해공군 의장대가 23일 베이징에서 오는 9월3일 개최되는 열병식 예행연습을 하고 있다. 베이징/신화 연합뉴스
49개국 대표·11개국 군대 참여
군 1만2천명·신무기 70분간 행진
첫회땐 노획한 무기 등장했지만
이번엔 “100% 국산·84% 최신예”
둥펑·젠·쿵징2000·즈9~11·훙6K…
미사일 100기·전투기 200대 등 선봬
남중국해 갈등 등 서방 정상들 불참
‘대중국 경계심’ 더 부추길지 주목
군 1만2천명·신무기 70분간 행진
첫회땐 노획한 무기 등장했지만
이번엔 “100% 국산·84% 최신예”
둥펑·젠·쿵징2000·즈9~11·훙6K…
미사일 100기·전투기 200대 등 선봬
남중국해 갈등 등 서방 정상들 불참
‘대중국 경계심’ 더 부추길지 주목
“1949년 10월1일 (베이징의) 가을 하늘은 청명했다. 턱에 완두콩만한 혹이 눈에 띄게 튀어나온 마오쩌둥이 산뜻한 인민복을 입고 서 있었다. 그 자리에는 저우언라이, 주더, 류사오치, 린뱌오, 덩샤오핑 등 대장정의 동지들도 함께 서 있었다. (천안문 망루에 올라선) 마오는 ‘이로써 중국 역사에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우리 4억7500만 중국 인민은 이제 일어섰다’고 선언했다. 약 10만명의 인파가 천안문 앞 벽으로 둘러싸인 구내에 빽빽이 서 있었다. 군중들은 ‘마오 주석 만세’라고 소리쳤다. 행사를 위해 도시는 붉은 장막과 깃발, 형형색색의 종이 등롱들로 단장돼 있었다. 신중국은 아직 외교 관계를 수립하지 못하고 있었다.”
언론인 출신의 중국 전문가 해리슨 E. 솔즈베리는 책 <새로운 황제들>에서 베이징 천안문(톈안먼) 광장에서 벌어진 중국 건국 첫 열병식 장면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로부터 66년 뒤인 2015년 9월3일 베이징에서 다시 한번 역사적인 열병식이 열린다. 첫 열병식 당시 ‘아직 외교 관계를 수립하지 못했던’ 신생 중국은 이제 미국과 함께 세계 2대 강국으로 부상했다. 중국은 이번 항일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1840년 아편전쟁 이래 열강의 침략과 내전, 웅크린 개발도상국이란 과거를 뒤로하고 중국굴기와 중국의 꿈을 선포할 예정이다. 마오쩌둥 시절 폐쇄된 공산주의 국가 중국과 덩샤오핑 시절 은밀하고 조용히 힘을 기르던 도광양회(韜光養晦)의 중국, 장쩌민·후진타오 시절의 화평굴기(和平屈起)의 중국을 넘어, 시진핑의 대국굴기(大國屈起) 중국이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다.
중국 국무원은 25일 “이번 전승기념식 열병식에 모두 49개 국가가 참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했다. 이 가운데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 등 30개 나라는 국가원수급이 참석한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등 10개 국제기구 대표자들도 참석할 예정이다. 러시아, 몽골, 파키스탄, 이집트, 쿠바 등 11개 국가가 군대를 파견해 열병식에 직접 참여한다. 지난 5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열병식에 27개국 지도자들이 참석한 것과 견주면 중국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시 주석은 3일 오전 10시께 마오쩌둥이 신중국 건설을 선포했던 천안문 망루에 외국 정상들과 함께 올라 열병식 개시를 선언하고 연설을 할 예정이다. “제국주의와 파시즘에 맞서 싸운 선열들을 기리고 역사를 거울삼고 평화를 수호하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는 내용이 위주가 되겠지만, 곧이어 등장하는 최신 무기와 중국군 1만2000여명이 70분 동안 벌이는 행진은 그가 주창해온 ‘강군몽’과 ‘중국몽’을 과시할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은 줄곧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주창해 왔다.
중국군은 이번 열병식에 최신예 무기들이 대거 등장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열병식 준비 관련 기자회견에 등장했던 중국군 인사들은 “육해공군과 제2포병, 무장경찰 부대 등이 모두 참가한다”며 “열병식에 동원되는 무기는 100% 중국산으로 이 가운데 84%가 신무기다”라고 밝혔다. 뤄위안 중국전략문화촉진회 부회장은 “시진핑식 군대 지휘를 보여줄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행사에서 중국이 선보일 최신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과 차세대 스텔스 전투기에 주목하고 있다. 중국군의 현대화 수준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차오량 중국 국방대 교수는 <신경보>에 “대륙간 탄도미사일인 둥펑 미사일 시리즈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둥펑-31B는 사거리가 1만1200㎞에 이른다. 미국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거리다. 이 미사일은 위성으로도 쉽게 탐지되지 않는 기능을 지니고 있다. 개량형인 둥펑-41은 핵탄두를 10발가량 장착할 수 있어 미국이 공들여 구축하고 있는 미사일 방어 체계(MD)를 무력화할 수도 있다는 평이다. <신화통신>은 “역대 열병식 중에 가장 많은 7종, 100기 이상의 미사일이 선보일 것”이라고 보도했다.
중국의 차세대 전투기 젠 시리즈도 군사전문가들의 이목을 끄는 무기다. 젠-31은 최대 속도가 마하 1.8에 공중 급유를 할 경우 작전 반경이 2000㎞에 달해 미국의 F-15보다 성능이 낫다는 평이 있다. 아울러 공중조기경보기로 470㎞ 떨어진 표적 60~100개를 동시에 추적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 쿵징-2000과 공격용 헬기 즈-9~11 시리즈 역시 등장 가능성이 높다. 최대 4000㎞의 사정 폭격거리를 지닌 전략폭격기 훙-6K도 등장한다. 중국은 이번 열병식에 200여대의 전투기를 선보여 6년 전 열병식보다 50대가량 많을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의 최신예 무기 과시는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앞세워 일본, 동남아시아 동맹국과 함께 중국의 팽창을 저지하려는 미국과 안보 법제 제·개정을 통해 중국에 빼앗긴 동아시아 주도권을 다시 쥐려는 일본, 남중국해 도서 지역에서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필리핀,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들에 대한 경고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황둥 마카오 국제군사학회장은 “중국은 열병식을 통해 항일전쟁 승리 기념은 물론이고 미국에 군사 근육을 과시함으로써 중국의 주변 일에 개입하지 말라는 무언의 신호를 보내려 한다”고 말했다.
중국은 1949년 10월1일 첫 열병식 뒤 지금까지 모두 14번의 열병식을 거행했다. 마오쩌둥은 집권 이후 1959년까지 매년 국경절(10월1일)을 맞아 열병식을 성대하게 거행했다. 첫 열병식에서는 국공내전 당시 국민당 군에서 노획한 무기가 대거 등장하면서 내전 승리를 과시했다. 1950년의 열병식에는 사상 최대인 2만4000여명의 병력이 참가했다. 열병식은 한국전쟁 중에도 멈추지 않았고, 1954년엔 김일성 당시 북한 수상이 참관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의 혼란기였던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 전후로는 열병식이 열리지 않았다.
열병식은 1984년 덩샤오핑이 “열병식을 군 사기 고취와 군민 유대 강화의 장으로 치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25년 만에 부활했다. 이후 장쩌민, 후진타오 주석 때는 건국 50주년과 60주년 등 10년 주기로 거행됐다. 이번 열병식은 국경절이 아닌 전승기념일에 맞춰 열리는 첫번째 열병식이다. 중국은 열병식 당일 베이징 공항을 일시 폐쇄하고, 행사장인 천안문 광장 주변은 사실상 계엄 상태에 들어간다. 베이징 주변 수도권 지역 공장 1만2255개는 28일부터 가동 중지에 들어가 이미 베이징 하늘은 오염물질이 사라지고 파랗게 변했다. 이른바 ‘열병식 블루(Blue)’다.
중국은 이번 기념행사가 중국만의 전승행사가 아닌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기념행사라는 점을 부각시키려 몇몇 눈에 띄는 외국 인사들도 초청했다. 중국의 항일, 반파시스트 전쟁이 스페인 내전 당시처럼 세계 양심세력이 함께 싸운 항쟁이었다는 것을 부각하려는 포석이다. 대표적인 초청 인사가 캐나다인 의사로서 항일 전쟁에서 부상한 중국 홍군들을 치료한 노먼 베순의 유가족들이다. 전도유망한 흉부외과 의사의 일상을 던지고 중국 전장에 뛰어든 베순은 열악한 상황 속에서 홍군을 치료하다 수술 도중 베인 상처로 인한 패혈증 탓에 1939년 49살의 나이로 숨졌다. 중국은 그를 ‘중국 인민의 동지’라고 칭한다.
중국은 2차대전 당시 중국에서 일본군과 싸운 퇴역 미군 공군 부대인 ‘비호대’(플라잉 타이거스) 노병들도 초청했다. 1941년 8월 중국 서남부 윈난성 쿤밍시에서 미군 비행 교관 클레어 리 셔놀트가 주도해 창설한 비호대는 폭격기 68대와 조종사 110명, 정비사 등 지상근무요원 150명으로 구성돼 일본기 300여대를 격추했다.
중국은 “이번 열병식의 의의는 역사를 기억하고 평화를 애호하며 미래를 함께 열어가자는 데 있다”며 “행사는 결코 특별 국가를 겨냥하지 않으며, 특히, 지금의 일본이나 일본 인민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열병식은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다수의 서방 국가들이 불참한 가운데 반쪽 행사로 치러질 전망이다. 외화내빈의 행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 굴기와 시진핑 정권 들어 중국이 동·남중국해 등에서 벌이고 있는 공격적인 외교 전략에 불쾌감이 적지 않다. 유럽 국가들 역시 기본적으로 미국과 인식을 같이하는데다 동아시아에서 벌어진 전쟁에 관심이 적다. 천안문 광장이 1989년 중국 군에 의해 민주화 항쟁이 진압된 곳이라는 상징성도 인권을 강조하는 서방 국가 정상들의 발목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일본 언론을 중심으로 열병식 참석설이 돌았던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방중 계획을 철회했다. 영유권 분쟁으로 껄끄러운 필리핀도 정부 대표단을 보내지 않는다.
시진핑 주석으로서도 열병식은 다소 뒤숭숭한 가운데 열린다. 국정 3년차를 맞은 그는 전임 장쩌민, 후진타오 주석보다 훨씬 빠르게 당, 정, 군을 장악했지만 기세등등하던 위상은 최근 흠집이 났다. 중국 상하이 증시는 6월 중순 이후 폭락세를 거듭하며 세계 경제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중국 정부는 시장에 결정적인 권한을 주겠다는 말을 스스로 뒤집고 강력한 시장 개입에 나섰지만 증시 추락은 날개가 없다. 재경영도소조와 중앙전면심화개혁영도소조 등 경제를 관장하는 핵심 조직의 조장을 맡으며 지휘봉을 잡은 시진핑 주석의 위기 관리 능력은 시험대에 올라 있다. 중국 정가에서는 반부패 정책을 통한 권력 다지기로 제왕적 권력 구축에 힘을 쏟는 시진핑 주석에 대한 우려가 새어나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게다가 열병식을 한달도 남겨 두지 않은 상황에서 명백한 인재로 확인된 톈진항 물류창고 폭발 사고가 일어나 중국 내 민심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전국인민대표대회는 열병식을 맞아 참전 노병 출신 고령 수감자들을 포함한 노년, 미성년 수감자 등에 대한 특별사면을 40년 만에 단행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미 천안문 광장은 경계와 통제로 삼엄하다. 과거 백성이 함부로 드나들 수 없고, 황제와 관리, 외국 사절단 정도만 출입하던 말 그대로의 자금성(紫禁城·쯔진청: 자주색의 금지된 성)으로 돌아간 것이다. 과연 열병식이 부강의 꿈에 한발짝 다가서는 중국을 세계에 과시하는 장이 될 수 있을지, 아니면 국제사회의 중국에 대한 경계심을 더욱 부추길지 세계의 이목이 천안문 광장으로 향하고 있다.
베이징/성연철 특파원 sychee@hani.co.kr
1954년 열병식에는 김일성 북한 수상이 참관했다.
1984년 열병식에서 덩샤오핑이 군대를 사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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