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사이버 해킹·남중국해 분쟁·위안화 평가절하 등 현안 산적
미, 안방 이점 살려 벼르기…중, 신형대국관계 무기로 방어
미, 안방 이점 살려 벼르기…중, 신형대국관계 무기로 방어
‘모순(矛盾)의 대결.’
22일부터 시작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첫 미국 국빈방문은 미국의 창과 중국 방패의 대결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임기를 1년여 남겨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안방에서 열리는 정상회담에서 사이버 해킹과 남중국해, 경제 문제 등을 놓고 공격을 벼르는 분위기다. 반면 시 주석은 ‘중국의 격상된 지위를 인정하고, 상호이익을 존중하라’는 ‘신형대국관계’를 방패 삼아 미국의 예봉을 피해 가려는 심산이다. 25일 정상회담은 미-중 갈등이 어느 때보다 첨예하게 대립한 시기에 열린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가시적인 성과를 도출하긴 힘들 것”이란 전망을 내놓는다. 뚜렷한 성과를 기대하기보다 서로의 솔직한 의견 교환에 무게를 둬야 한다는 분석이다.
미-중 두 정상의 만남은 이번이 5번째다. 두 정상은 2013년 6월과 9월 미국 캘리포니아 랜초미라지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이어 지난해 3월과 11월에 네덜란드 헤이그와 베이징 중난하이에서 만났다. 하지만 정식 국빈방문을 통한 정상회담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정상회담에는 껄끄러운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굴기’(급속한 부상)를 내세운 시진핑 정부는 영향력을 확대해 미국의 기득권을 파고들었다. 지난해 11월 회동 뒤 중국은 남중국해 일대에서 빠른 속도로 인공섬 건설 작업을 밀어붙였다. 올 6월엔 자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출범 협정문 서명을 마쳤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은 미국 주도의 세계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IMF)에 대항하는 국제금융기구로 간주된다. 8월엔 수출 촉진과 불황 타개책으로 기습적인 위안화 평가절하를 했다. 급기야 중국은 9월3일 항일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최신 무기들을 선보이며 ‘강국’의 이미지를 한껏 과시했다.
미국은 이런 일련의 중국의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직간접으로 불쾌감을 피력했다. 미국은 홈그라운드에서 열리는 정상회담을 통해 최근의 수세 국면을 전환하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미국 정부 고위 관리들이 잇따라 나서 사이버 해킹의 배후로 중국을 지목하며 특정 기업과 개인을 상대로 강력한 제재 조처를 마련할 것이라고 언급한다. 대선 국면에 돌입한 공화당의 대선 경선 주자들도 일제히 중국 위협론을 내세우며 중국 때리기에 나서고 있다. 오바마 정권의 무른 대응 탓에 미국의 국익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는 “미국 경제가 더 늦기 전에 중국과 결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부에선 시 주석의 방미 취소 주장까지 나왔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이번 정상회담의 가장 뜨거운 주제로 사이버 해킹 문제를 꼽는다.
우선, 미국의 분위기가 심상찮다. 오바마 대통령은 12일 플로리다주 포트미드 기지에서 한 타운홀 미팅과 16일 기업인들과의 라운드포럼 행사에서 “사이버 해킹 문제가 최대 의제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발 사이버 공격이 더욱 명확해지고 있다. 이 사안을 핵심적인 안보 위협 요소로 받아들여야 한다. 더는 중국에서부터 시작하는 사이버 공격을 용납할 수 없다”며 “문제가 제대로 풀리지 않을 경우 몇가지 대응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틀 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오바마 대통령이 미-중 정상회담에서 미 정부와 민간기업을 겨냥한 중국의 해킹에 관해 우려를 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6월 미 연방정부기구인 인사관리처(OPM)가 보유한 공무원 2200만여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이후 중국에 대한 공세의 고삐를 조이고 있다.
이에 중국은 에드워드 스노든이 폭로한 미 국가정보국의 전세계 도·감청 사례를 상기시키며 ‘우리도 사이버 해킹의 최대 피해자’라는 논리를 내세운다. 아울러 해킹은 중국 정부와 무관한 일이며 근절 노력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중국이 시진핑 주석의 첫 방문지인 시애틀에서 ‘미-중 인터넷 산업 포럼’을 열며 미국의 주요 정보기술(IT) 업계 관계자들에게 보낸 초청장에는 미국의 공세를 희석시키려는 셈법이 담겨 있다.
남중국해 분쟁도 미국이 벼르고 있는 문제다.
미국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14일 “위성사진 분석 결과, 중국이 스프래틀리군도(중국명 난사군도)의 미스치프 환초에서 3번째 활주로를 건설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은 올해 상반기 내내 중국이 전례없는 속도로 최소 9개의 인공섬을 건설하며 항행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고 비판해 왔다. 애슈턴 카터 국방장관은 “군사적 성격을 띤 중국의 인공섬 건설이 멈추지 않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미국 정가에선 “미군이 인공섬 반경 12해리(22㎞) 안의 해역과 상공에 군함과 항공기를 진입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태도는 단호하다. 모든 작업은 중국의 정당한 주권 범위 안에서 이뤄지고 있으며, 군사적 목적만이 아닌 해상사고 구조와 기상 관측 등의 다목적 사업이라는 것이다. 특히 중국은 미국이 영유권 분쟁의 당사국이 아님에도 왈가왈부하는 것은 이 지역에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저의가 있다고 여긴다.
중국의 전격적인 위안화 평가절하와 중국에 진출한 미국계 기업의 불이익 여부 문제도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는 중국의 갑작스러운 위안화 평가절하가 미국 경제에 걸림돌이 될까봐 우려하는 분위기가 많다. 제이컵 루 재무장관은 11일 왕양 중국 부총리와의 통화에서 “중국이 수출을 촉진하는 방책으로 인위적인 위안화 평가절하를 해선 안 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미국 쪽은 또 중국이 최근 입법한 국가안전법과 시민단체 관련 법을 통해 중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의 활동에 족쇄를 채워서는 안 된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밖에 양국 정상은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움직임과 관련한 한반도 정세 안정화 방안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추가 핵실험을 암시한 상황이라 이에 대한 경고성 메시지가 나올 가능성도 적지 않다. 16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한반도 비핵화 추진’에 관한 미-중 협력 강화를 언급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핵심 의제들에서 두 나라의 입장차가 워낙 커 구체적인 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을 내놓는다.
특히 임기 말에 접어든 오바마 대통령과 7년여가 남은 시진핑 주석의 권력 시차도 존재한다. 한 베이징 외교소식통은 “중국 학자들 사이에서는 저무는 오바마 정부와 무슨 이야기를 하겠느냐, 차기 정권과 다음 논의를 하는 것이 낫다는 솔직한 의견도 나온다”고 말했다. 게다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첫 방미와 시 주석의 방미가 겹치는 탓에 시 주석의 방미에 대해 미국 정부와 세간의 주목도가 떨어질 것이란 전망도 많다. 교황 역시 시 주석과 만찬가지로 22일부터 닷새간 미국을 방문하는데, 이 가운데 워싱턴 일정은 이틀이나 시 주석과 겹친다.
베이징/성연철 특파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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