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우산시위 1주년을 맞은 28일 홍콩특별행정구 정부청사 앞에서 노란 우산을 쓴 시민들이 침묵 시위로 1년 전의 민주화 운동을 기리고 있다. 홍콩/AP 연합뉴스
중국, 월드컵 2차 예선서 홍콩에 0대0 무승부…최종예선 탈락 위기
단순한 축구 경기 이상의 의미를 띤 경기였다. 홍콩 축구 국가대표팀이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과 무승부를 기록하자 홍콩 전역은 마치 월드컵 우승을 차지한 양 들썩였다. 17일 밤 홍콩에서 벌어진 중국과 홍콩의 월드컵 2차 예선 경기는 중국과 홍콩 관계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준 한판이었다.
경기가 벌어진 홍콩 몽콕 스타디움은 시작 전부터 긴장감이 흘렀다. 경기장 안팎엔 1200여명의 경찰이 배치됐다. 군데군데 비디오 채증을 하는 사복 경찰도 눈에 띠었다. 중국인과 홍콩 관중은 다른 출입구를 통해 경기장에 입장했다. 500여명의 중국 관중들은 입구에서 아이디(ID) 카드를 제출하고 꼼꼼한 소지품 검사를 받았다. 경찰견도 검색에 동원됐다. 악화된 중국-홍콩 관계 탓에 만일의 충돌에 대비한 것이다. 5500여명의 홍콩 관중들도 검색을 통과하느라 1시간여 이상 기다려야 했다. 표를 구하지 못해 경기장에 들어가지 못한 홍콩 시민들은 인근 바와 광장에서 거리 응원을 펼쳤다. 바 주인들은 “평소보다 손님이 50~80% 가량 늘었다”고 했다.
경기전 중국 국가가 울리자 관중들은 둘로 나뉘었다. 중국 관중들은 국가인 ‘의용군행진곡’을 따라 불렀다. 홍콩 관중들은 야유와 함께 ‘부(BOO· 야유를 뜻하는 의성어)’라고 적힌 종이를 펴들었다. 지난해 중국 정부가 홍콩 행정장관 완전 자유 직선제를 요구하는 우산 시위를 묵살한 뒤 홍콩 시민들의 반중 감정은 극도로 악화됐다. 당시 중국 정부는 2017년 행정장관 선거에 출마할 수 있는 입후보자를 다수의 친중 인사로 구성된 1200명의 선거인단 추천을 받은 인사 2~3명으로 제한한 뒤 이들에 대한 직접 선거를 치른다는 선거안을 내놨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홍콩 시민들은 ‘가짜 직선제’, ‘무늬만 직선제’라고 반발했지만 중국 정부는 이들의 시위를 “서방세계의 불순한 조정을 받은 것”이라며 무시했다. 홍콩 관중들은 9월8일 홍콩-카타르 축구 경기에 앞서 중국 국가가 울리자 야유를 보냈고, 국제축구연맹(FIFA)은 홍콩 축구협회에 5천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중국 관영 매체들도 국가를 모독한 행위라고 비판을 가했다.
90분 동안의 경기 결과는 0-0 이었다. 중국과 홍콩 축구대표팀 모두 월드컵 예선 통과에 별 도움이 안되는 결과였지만 홍콩 시민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종료 휘슬이 울리자 홍콩 축구 대표팀은 마치 승리를 거둔 것처럼 스타디움을 도는 세리머니를 연출했다. 홍콩 관중들 역시 마치 월드컵에서 우승이라도 한 양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일부 시민들은 “우리가 홍콩이다”라고 외쳤다. 저조한 성적 탓에 홍콩 시민들의 외면을 받았던 축구대표팀이었지만 이날만큼은 달랐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이날 경기를 “골 없는 영광”이라고 표현했다. 홍콩 시민 밥 우는 <파이낸셜타임스>에 “최근 홍콩과 중국 사이의 갈등이 축구 대표팀과 이날 경기에 대한 관심도를 크게 높였다”며 “축구는 늘 정치성이 개입되는 스포츠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관중들은 “축구는 축구일 뿐이다. 정치와 연관 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홍콩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한국인인 김판곤 감독이다.
중국 대륙 언론들은 경기 결과에 실망감을 표시했다. 중국은 무승부 탓에 자력으로 본선에 진출할 수 없게 됐다. 제대로 홍콩에 발목을 잡힌 셈이다. 일부 매체들은 “월드컵 본선 진출이 가물가물해졌다”고 전했다. 축구 팬으로 알려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 국가대표팀이 월드컵에 진출하는 것, 우승하는 것, 중국이 월드컵을 개최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해왔다. 그는 지난달 영국 방문 때는 맨시티 구단의 연습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베이징/성연철 특파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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