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베이징 시내에서 중국의 젊은이들이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을 성토하는 플래카드를 앞세운 채 격렬한 반일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천안문’ 뒤 애국교육 산물…반일시위 주역
국수주의자·‘남탓하는 공격자’ 냉소도 받지만
“중국 변혁에 중요한 구실할 것” 반박도
국수주의자·‘남탓하는 공격자’ 냉소도 받지만
“중국 변혁에 중요한 구실할 것” 반박도
최근 몇 년 사이 중국 ‘인터넷 강호’에서 가장 뜨겁게 오르내리는 낱말 가운데 하나가 ‘펀칭’(憤靑, 분청)이다. ‘분노 청년’의 준말인 ‘펀칭’은 사전엔 아직 오르지 못했지만, 대체로 애국주의·민족주의에 불타는 ‘열혈청년’을 가리킨다. 지난해 8월 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중국이 일본에 참패하자 “샤오르번 사비”(쪽발이 바보)를 외치며 흐느끼던 축구광들, 지난 4월 선전·광저우·베이징·상하이 등 대도시 중심가를 돌며 반일시위를 벌이던 이들이 바로 펀칭의 전형이다. 1990년대 초 작가 량샤오셩이 “나는 펀칭이다”라고 선언했을 때까지만 해도 이 말은 긍정적인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최근 들어선 국내외 정치·경제·사회 문제에 격렬한 비판을 일삼는 극단적 애국주의자, 자신의 실패를 외부에 대한 공격으로 만회하려는 패배자라는 부정적인 뜻이 더해졌다. 특히 욕설과 매도를 즐기는 이들은 ‘성낼 분(憤)’을 발음이 같은 ‘똥 분(糞)’으로 바꿔 ‘펀칭’(糞靑)이라 불리기도 한다. 펀칭은 1989년 천안문 민주화시위를 강제진압한 뒤 중국 공산당이 강화한 ‘애국주의 교육’의 산물이다. 이후 중국 젊은이들은 크게 두 부류로 갈렸다. 하나는 경제성장이라는 양지에서 자라난 중국판 오렌지족인 ‘샤오쯔’(小資)이고, 다른 하나는 억압적인 정치의 그늘에서 자라난 중국판 질풍노도의 세대인 ‘펀칭’이다. 대부분의 샤오쯔는 화이트칼라다. 하지만 펀칭이라고 해서 다 블루칼라이거나 빈곤층인 건 아니다. 학생, 지식인은 물론 고소득 전문가층 가운데서도 펀칭인 이들이 적지 않다. 작가 장위안산(42)은 ‘샤오쯔 대 펀칭’이란 글을 통해 두 집단을 이렇게 비교했다. “샤오쯔가 가발을 쓰면 펀칭은 머리를 박박 민다. 샤오쯔가 머리를 염색하면 펀칭은 문신을 한다. 샤오쯔가 물을 마시면 펀칭은 술을 마신다. 샤오쯔가 조용히 일광욕을 즐기면 펀칭은 미친 듯 스트리킹을 한다. 샤오쯔가 디스코텍에 가면 펀칭은 번지점프를 한다. 펀칭은 샤오쯔를 ‘한간’(漢奸, 매국노)이라 욕하고, 샤오쯔는 펀칭을 ‘아이궈제이’(愛國賊, 국수주의자)라 욕한다. 이념적으로 말하면 샤오쯔는 자유주의, 펀칭은 신좌파에 가깝다.” 최근엔 펀칭에 대한 평가를 둘러싸고 열띤 공방이 오가고 있다. 장위안산은 “샤오쯔는 모두 진짜지만 펀칭은 다수가 가짜”라며 “샤오쯔는 건설성이 많고 펀칭은 파괴성이 많다”고 주장해 논란을 촉발시켰다. ‘마귀교관’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네티즌은 인터넷 포털 ‘소후’에 올린 글에서 “적지 않은 펀칭이 하늘과 사람을 원망하는 패배자인 게 사실이지만, 몇몇 펀칭은 우리 사회의 진보를 추동할 역량이 있다”며 펀칭의 긍정적인 면을 강조했다. ‘아투’라는 아이디의 네티즌은 “펀칭의 분노는 뒤떨어진 사상과 분투하지 않는 현실에 대한 분노이지만, 실제로 행동하는 이는 적다”고 아쉬워했다. 베이징 외교가의 한 중국통은 “펀칭의 분노는 중국 사회 현실에 대한 분노를 담고 있다”며 “그러나 지나치게 억압적인 정치제도로 인해 분출구를 찾지 못하고 반일시위 같은 집단행동으로 터져나오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중국 사회가 또 한번 변혁의 시기를 맞을 때 펀칭의 움직임은 결정적인 구실을 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베이징/이상수 특파원 lee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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