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1400만명이 사는 중국 광저우시 파저우 바오리광장(쇼핑몰) 주변에 있는 음식점과 상점 등이 설 연휴 이후 계속 휴업 상태다. 지난 7일 오후 오가는 사람이 없는 텅 빈 광장의 모습.
▶ 중국 광둥성과 광저우는 각각 1261명, 328명(2월14일 오전 10시 기준)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곳이다. 중부의 공업 중심지인 우한에 유관기업이 많다 보니 그곳으로부터 온 설 귀성객이 많아 후베이성을 제외하고는 가장 많은 감염자가 발생했다. 광둥성 정부는 설 연휴 이후 2월10일까지 업무를 시작하지 말라고 권유했다. 광저우의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는 오래된 마을에서 지난 2년간 살아온 김유익 화&동( 和&同) 청춘초당 대표가 현지 분위기를 전해왔다.
페리선이 광저우시를 관통하는 주강에 있는 섬마을에 다가서자 건너편 부두가 시야에 들어왔다. “휴~” 콩닥거리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예상했던 대로 공안은 없고 지역복지센터에 일하는 것으로 보이는 두 청년의 모습만이 어른거렸다.
“출입증 없으면 마을에 못 들어가는데.”
“죄송해요. 아직 등록을 못 했지만, 이 마을에 살고 있어요.”
망설이는 표정의 두 사람을 모른 척 집으로 이어진 골목길 안으로 종종걸음 쳐 들어갔다. 대보름을 맞아 시내에 사는 여자친구를 방문했다가 수심에 찬 그의 환송을 뒤로 하고,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오는 내내 안절부절 주위를 둘러봤다. 2월10일 월요일 오후, 승객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그나마 모두 마스크를 뒤집어쓰고 있어 주위를 둘러보는 경계심 가득 찬 눈동자밖에 보이지 않는다.
의료진 풍부하고 사스 대처 경험 있어
다시 휴대폰으로 눈길을 돌려 바이러스와 관련한 새로운 소식이 있는지 위챗(메신저)과 페이스북을 번갈아 들여다봤다. 한국 페친들이 환호하는 오스카상 뉴스도 제목만 보고 그냥 넘겨버렸다. 자기 발등에 떨어진 불 때문인지 한국의 중국인 입국 정책이나 원조 관련 뉴스에도 별말이 없던 중국 친구들이 오히려 그 소식 들었느냐며 아는 척을 한다.
알리페이(중국 알리바바그룹이 개발한 온라인 금융·결제 서비스)에서 동네 수준까지 일목요연하게 확인할 수 있는 전국과 지역별 실시간 통계를 보니, 광둥성과 광저우는 이미 각각 1261명, 328명(2월14일 오전 10시 기준)의 확진자가 발생한 상황이었다. 이곳은 저장성 등을 중심으로 한 장강삼각지대와 함께 중국의 2대 경제 중심지 중 한곳인 주강삼각지대에 속한다. 전국 최고인 1억명 이상의 상주 인구를 가진 광둥성과 그 성도인 인구 1400만의 광저우는 중부의 공업 중심지인 우한에 유관기업이 많다 보니 그곳으로부터 온 귀성객들도 많아, 후베이성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감염자가 발생했다. 증가세는 주춤하다가 귀환이 시작되며 소폭 상승세로 돌아선 듯 보였다.
지난 7일 광저우 파저우 바오리광장(쇼핑몰) 주변에 문을 닫은 맥도널드 디저트 점포의 모습.
하지만 광둥성 전체에서 단지 한명의 사망자만 발생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전반적으로 심각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사스 퇴치 영웅 중난산 박사가 이끄는 광저우호흡질병연구소가 소재하는 등 의료 자원도 풍부하고, 사스 발생지로서 일선 대처 경험이 있는 지역정부가 지난 1월23일 우한 봉쇄 이후로 비교적 철저하게 도시 위생과 방역 활동을 전개해왔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지난해부터 분리수거가 시작된 음식쓰레기 등을 환경미화원들이 평소보다 더 자주 비워가는 통에 먹이를 찾지 못한 동네 길냥이들이 정원에서 고양이를 키우는 우리 집에 수시로 침입할 정도였다. 그래서 평소 같으면 한달은 더 버틸 만큼 남아 있어야 할 사료가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덕분에 인구 밀집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우리 마을 주위엔 단 한명의 확진자도 나오지 않았다. 광둥성에 다녀간 한국인 부부가 확진자로 밝혀졌다는 소식을 듣고는 오히려 운이 나쁜 경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쨌든 무사히 마을 안으로 들어와 조용히 대문을 닫아걸고 내가 사는 2층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마치 밀항자라도 된 듯한 기분에 같은 건물에 살며 주방이 있는 1층과 정원을 공유하는 중국인 커슈(가명) 가족들조차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며칠 바깥바람을 쐬고 온 나를 보는 그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전날 마을이 봉쇄돼 출입증 없이는 들어올 수 없으니 우선 동사무소에 가서 신고를 하라며 커슈는 경고하는 메시지를 보냈고, 위험한데 왜 싸돌아다니냐는 가시 돋친 충고도 잊지 않았다.
실은 나도 중국인들의 습관대로 설 전날 여자친구의 집으로 가 가족들과 같이 식사를 하고 돌아온 1월25일 이후 2주간 마을 밖을 나서 본 적이 없다. 우한에서 감염 사실을 모른 채 고향으로 귀성했던 사람들과, 여로에 이들과 우연히 마주친 채 감염됐기에 근본적으로 추적이 불가능한 다른 지역으로부터의 귀성객들이 모두 발병하는 대보름 이후엔 감염 리스크가 많이 줄어들 터이니, 그때까지만이라도 외출을 삼가라는 중국 의료인들의 경고는 충분히 합리적이었기 때문이다.
마음에 조금은 여유가 생겨 여자친구 가족과 탕위안(대보름에 먹는 팥소 등이 든 찹쌀경단)을 빚고 귀가할 때는 아파트에 갇혀 답답한 생활을 하는 여자친구도 함께할 생각이었다. 700년이나 된, 내가 사는 마을엔 텃밭도 있고 매일 산책해도 물리지 않는 뒷동산과 친구들이 사는 정감 있는 골목들도 있으니까. 그런데 여자친구 집을 방문한 사이 마을이 봉쇄되었다니, 우선 내 귀가조차 보장이 안 되는 판이어서 여자친구 동반은 언감생심이었다. 쓸데없이 외출해 바이러스를 옮겨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커슈 가족의 의심의 눈초리가 ‘정부 방침’이라는 정당성을 입고 사정없이 압박해 들어올 것이 뻔해 그런 불편한 처지를 여자친구에게 만들어주기는 싫었다.
문밖은 누구든 잠재적 감염자 취급
도시의 화이트칼라 중산층 커슈 가족은 반년 전에 마당이 너른 아담한 3층 건물인 우리 집으로 이사를 왔는데, 내색은 안 했지만 어색한 공기가 형성된 지는 사실 좀 됐다. 건국 70주년을 맞아 유독 화려했던 지난해 10월의 국경절 열병식 행사 때 커슈 가족은 빔프로젝터까지 설치하고 마을에 있는 사립학교 학부모들인 같은 처지의 이웃들을 불러 1층 홀에서 이를 보며 환호했다. 그날부터 옥상에 대형 오성홍기를 무려 3개월 넘게 걸어 놓고 틈날 때마다 중국 정부가 프로파간다용으로 만들어 한동안 유행시켰던 ‘나와 나의 조국’을 힘차게 불러대는 가족의 모습에서 1970~80년대 한국의 어떤 장면들이 떠올라 불편해졌다. 마을의 노당원들도 안 하는 짓을 왜? 마치 애국심을 증명받기 위해 스스로 끊임없이 다짐하는 것만 같았다. 공산당을 조금 꺼려하고 서방세계를 동경하며 자녀 유학과 이민의 기회만을 노리던, 내가 접했던 수많은 여느 중산층의 모습과도 사뭇 달라 어리둥절했다. 어쩌면 가장의 직업이 지방정부와 이해관계가 많은 지역 건설회사 간부라는 것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다른 마을 친구가 귀띔을 해줬다.
사달이 난 것은 설을 쇠고 며칠 뒤였다. 마침 준비했던 해외 필드트립을 코로나19 사태로 취소한 여자친구가 우리 집을 방문해 마을 친구들과 정원에서 차를 마시는데 커슈가 고함을 쳤다.
“마을 주민 아닌 사람들도 부른 거 아니죠? 우리 가족은 앞으로 아무도 안 만나요!”
그리고 그들은 문을 닫아걸고 스스로를 완벽히 세상과 격리시키기 시작했다. 장보기는 모두 택배를 이용하고 그들의 집안일을 거들어주던 마을 아주머니도 방문을 멈췄다. 제법 안면이 있을뿐더러 대학교 교원 신분인 그녀를 포함해 대문 밖 세상 그 누구도, 나조차도 그들에겐 잠재적 감염자에 지나지 않았다.
지난 7일 광저우 시내버스에서 버스 운전사가 승객이 탈 때마다 체온을 일일이 측정하고 있다.
지난 7일 광저우 시내버스에서 버스 운전사가 승객이 탈 때마다 체온을 일일이 측정하고 있다.
중화권에선 제법 신뢰를 얻었던 홍콩의 보통화 방송 <봉황위성텔레비전>(피닉스티브이)에서 수년간 평론 프로그램을 맡았던 유명 지식인 렁만타오(량원다오)는 자신이 중국 대륙에 만든 ‘비스토피아’(vistopia)라는 종합매체의 팟캐스트에서 ‘도시 봉쇄 후의 차별과 공포’라는 주제를 통해 도시 봉쇄와 마을 봉쇄에 따른 인권 문제와 함께 (오랜 기간 외지에서 생활해서 감염 가능성이 타 지역민들과 다를 바 없는) 우한·후베이 출신자에 대한 최근의 비이성적인 차별 현상을 통탄한다.
“입만 열면 애국자를 자처하는 이들, 해외의 중국 때리기에 그렇게 쉽게 분노하던 이들이 어째서 우한과 후베이 동포들을 무차별적으로 냉대하는가. 서구사회에서 벌어지는 중국인과 황인종에 대한 적대감과 차별은 우리 내부의 그것과 꼭 닮아 있지 않은가?”
보통 중국 사람들은 춘절을 지낸 뒤 음력 정월 칠일(올해는 1월31일)을 전후해 업무에 복귀한다. 물론 대보름이 지나고야 실제 업무가 이루어지는 기업도 적지 않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한 광둥성 정부 차원에서 2월10일 전에 업무를 시작하지 말 것을 권유하고 온라인상의 서약서까지 작성하게 했다. 그래도 인력이 현장에 꼭 필요한 제조업 등을 제외한 많은 기업은 재택근무를 시작했고, 이미 귀갓길에 올라야 했을 이들도 이제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통제가 비교적 심한 허난성 농촌지역에선 아예 지역 봉쇄로 고향마을에 발이 묶인 친구들도 있다. 며칠 전부터 우리 마을을 포함한 광저우의 동네별 출입관리 정책이 엄격해진 것도 실은 발병이 늘어서라기보다 후베이성 등에서 설을 보내고 돌아오는 이들을 관리하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 각급 학교도 개학을 차일피일 미루더니 3월 이전에는 불가하다는 훈령이 떨어졌다. 그 전에는 누구도 대학 캠퍼스 출입이 자유롭지 않은 상황인데 대신에 온라인 강좌를 준비하라고 다그치는 모양이다.
세계가 중국과 글로벌 국내총생산(GDP) 하락을 염려하지만, 비교적 낙관적인 성격의 중국 친구들은 이번 기회에 중국의 업무와 교육환경의 온라인화, 유관 산업의 발전이 더 가속화할 것 같다고 자신한다. 그러고 보니 톈진에선 드론이 도시를 누비며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을 포착해 경고방송을 하는 동영상을 봤다. 이 재난이 끝나면 우린 더 좋은 세상에 살게 될까?
지난 7일 오후 광저우 파저우 바오리광장(쇼핑몰) 입구에 출입 시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할 것과 체온을 측정하니까 협조해달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건강한 몸, 이 병도 이겨낼 수 있어”
딱 텅 빈 거리만큼 더 붐비던 온라인 공간에선 통제의 언어, 진실 아니면 비밀과 거짓말, 위로와 비난의 말이 넘쳐난다. 그중에서도 환경과 건강한 먹거리에 관심이 많은 시민들이 모인 광저우 파머스마켓 단체 위챗방의 토론을 주도하던 현지 퇴직 언론인인 엘레나(가명)의 발언이 인상 깊었다.
“지난해 12월 말 홍콩대 의과대학 유엔쿽융(위안궈융) 교수가 우한에서 발생한 원인 불명 폐렴을 검토해보니, 사스와 유사하다며 경고하는 홍콩 언론의 보도가 눈길을 끌었어요. 1월 초 ‘우한 8군자 유언비어 유포 처벌’(최근 사망한 리원량 의사를 포함한 8명의 우한 의료인이 코로나19 가능성을 단체 위챗방에 알리자 우한 정부의 제재를 받음) 소식에 순식간에 4만명의 누리꾼이 ‘좋아요’를 누른 걸 보고 (정부가 사스 발병 때처럼 진실을 오랫동안 감추는) 어리석은 역사가 반복되는 것에 탄식했지만, 한편으로 나는 냉장고를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은퇴 뒤 교외 마을로 이주해 텃밭을 가꾼 지 2년이 넘었어요. 자급자족도 가능하고 주변에 좋은 이웃들도 많아서 저는 여전히 평온하게 생활합니다. 너무 아이들 성적 걱정만 하지 마시고 자연 속에서 뛰놀게 하세요. 건강한 몸을 유지하면 독감 정도에 가까운 이 병도 쉽게 걸리지 않고 잘 이겨낼 수 있을 거예요. 누구보다 고통받는 우한 시민들을 응원합니다.”
그녀의 말을 듣고 보니 우리 마을 원주민들의 평화롭고 일상적인 모습과 도시에서 혹은 마을에서조차 스스로를 가둔 채 조바심치는 도시민들의 심리 낙차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나도 마스크를 쓴 채 아침 일찍 동네 텃밭으로 나서며 중국인들이 서양판 칠월칠석으로 부르는 밸런타인데이에도 여자친구를 만나지 못하는 우울함을 달래기로 했다.
광저우/글·사진 김유익 화&동(和&同) 청춘초당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