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골목길에서 자원활동에 나선 주민이 간이 장애물을 설치하고 주거지역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두차례 연장했던 춘절(설) 연휴가 끝난 지 보름이 지났지만, 왕성(49)은 여전히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중국 광둥성의 거대도시 선전에서 오랜 기간 일해온 터지만, 좀처럼 그를 받아주는 공장이 없기 때문이다.
오래전 떠나온 고향 땅이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그는 코로나19의 진원지인 후베이성 출신이다. 호적(후커우)에 그리 적혀 있으니 일자리가 나지 않는다. 얼마 남지 않은 예금에 기대어 근근이 버티고 있다는 그는 “혼자 고립돼 있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중국을 휩쓴 코로나19로 한계선상에서 생활해온 이주노동자 ‘농민공’의 삶이 더욱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가 24일 보도했다. 도시인보다 훨씬 낮은 임금을 받고, 그들이 꺼리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농민공들이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것이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지난해 4월 내놓은 자료를 보면, 고향을 떠나 중국 각급 도시에서 살아가는 농민공은 모두 2억8836만여명에 이른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곳곳에서 봉쇄령이 내려지면서, 춘절을 맞아 고향을 찾았던 농민공들 상당수는 발이 묶였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 20일 중국 교통당국의 발표 내용을 따 “춘절 연휴가 끝난 뒤에도 농민공 약 2억2천만명이 일하던 도시로 복귀하지 못하면서 공장과 각종 건설공사 현장에서 인력 부족이 심각한 상태”라고 전했다.
농민공은 도시로 복귀한 뒤에도 14일간 의무적으로 격리기간을 거쳐야 한다. 농민공을 ‘잠재적 코로나19 확진자’로 취급해 지정 격리소에 수용하고 있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상하이 인근 장쑤성 우시 당국은 농민공의 도시 재진입 자체를 금지하고 “위반하면 심각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이들은 경제활동을 사실상 멈춘 채 한달 이상을 보냈다. 강제 ‘무급휴직’인 셈이다. 가뜩이나 얇은 농민공의 지갑은 점점 더 가벼워지고 있다. 허난성 정저우에서 공장 노동자로 일하는 류원(42)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살던 아파트에서 쫓겨났다. 춘절 연휴에 후베이성 다음으로 확진자가 많은 광둥성 시가에 다녀온 사실을 안 집주인이 일방적으로 퇴거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임시로 빌린 숙소에서 버티고 있는 그는 <뉴욕 타임스>에 “지금껏 간신히 버텨왔는데, 이제 희망이 없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진원지인 후베이성에도 약 1천만명의 농민공이 살고 있다.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시작되려면 적어도 몇달은 걸릴 것으로 보인다. 건설노동자 황촨위안(46)의 다섯 가족은 지출을 줄이기 위해 당분간 고기를 먹지 않기로 했다. 그는 신문에 “회사에서는 계속 ‘기다리라’고만 한다. 앞날에 대해선 이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미래를 생각할 때마다 머리만 아파진다”고 말했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inhw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