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지난달 31일 마스크를 쓴 채 입법회 선거 연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홍콩/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이 홍콩판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시행과 관련해 홍콩 정부 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을 비롯한 고위 인사 11명에 대한 제재에 나서자 중국과 홍콩 정부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 홍콩 당국이 ‘보복 대응’을 경고한 가운데 중국은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를 열어 홍콩 입법의원 선거 연기에 따른 후속 대책 마련에 나섰다.
9일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의 보도를 종합하면, 람 장관은 전날 성명을 내어 “미국의 제재 대상자는 국가 안보를 수호하고, 750만 홍콩 시민뿐 아니라 14억 본토 인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영광스러운 의무’를 수행하고 있다”며 “미국의 야만적 행태에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홍콩 주재 중국 중앙정부 연락판공실(중련판) 뤄후이닝 주임도 성명을 내어 “미국이 이른바 ‘제재’란 걸 부과한 것은 내가 조국과 홍콩을 위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을 입증한다”며 “중국은 미국의 ‘어릿광대 같은 짓’에 겁을 먹거나 위협을 느끼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미국에 자산이 없기 때문에 제재는 아무 소용이 없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내 자산을 동결할 수 있도록 100달러 정도는 보내줄 수 있다”고 비꼬았다.
앞서 미 재무부는 지난 7일 “홍콩의 자치를 훼손하고 홍콩 시민의 자유권을 억압하는 데 관여한 인물 11명에 대해 제재를 부과한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람 장관을 특정해 “홍콩의 자유와 민주적 절차를 억압하는 중국의 정책을 실행에 옮긴 직접적 책임이 있다”고 비판했다. 미 재무부의 이번 조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7월14일 ‘홍콩 정상화’와 관련해 내린 행정명령에 따른 후속 조처다.
제재 대상에는 람 장관 외에도 △크리스 탕 경무처장 △테리사 쳉 율정사장 △존 리 보안국장 등 홍콩보안법 시행에 직접 책임이 있는 인사 8명이 이름을 올렸다. 또 샤바오룽 국무원 홍콩·마카오 사무판공실 주임과 뤄후이닝 중련판 주임 등 중국 본토 관료 3명도 포함됐다. 미 재무부는 “제재 대상자들의 미국 내 자산은 동결되고, 이들과 관련된 모든 금융 거래도 금지된다”고 밝혔다.
제재 대상에 포함된 에드워드 야우 홍콩 상무경제발전국장은 <홍콩방송>에 “미국의 제재는 홍콩 내정에 대한 노골적이고 야만적인 개입”이라며 “제재에 맞서 대응 조치를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홍콩 통화당국은 이와 관련해 8일 공개서한을 내어 “외국 정부의 일방적 제재 조처는 홍콩에서 법적 효력이 없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제재 발표와 때를 같이해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회가 나흘간의 일정으로 8일 소집됐다. 관영 <신화통신>은 제재 대상인 샤바오룽 홍콩·마카오 사무판공실 주임이 이날 전인대 상무위에 출석해 홍콩 입법의원 선거 연기에 따라 현 입법의원의 임기를 연장하는 방안에 대해 보고했다고 전했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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