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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건국일인 ‘국경절’ 연휴를 맞아 5일 마스크를 한 베이징 시민들이 첸먼 쇼핑거리를 걷고 있다. 중국 정부는 최근 내수 육성을 통해 세계적 경기 변동과 예측 불가능한 외부 파장을 최소화하겠다는 의지로 이른바 ‘쌍순환’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베이징/AFP 연합뉴스
시진핑 “내수 잠재력 장점 살려 국내·국제 ‘쌍순환’ 촉진 구조를” ‘쌍순환’이란 용어는 지난 5월14일 열린 중국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처음 썼다. 당시 시 주석은 “공급 측 구조 개혁을 심화하고, 중국의 세계 최대규모 시장과 내수 잠재력이란 장점을 살려 국내·국제 쌍순환이 서로를 촉진하는 새로운 발전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같은 달 23일 열린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경제계 위원 상대 강연과 지난 9월1일 열린 ‘중앙전면심화개혁위원회’ 연설 등에서 쌍순환의 ‘주체’를 내수 위주의 ‘국내대순환’이라고 못박았다. 내수 시장 육성을 통해 중국 경제의 안정을 해치는 세계적 경기 변동과 예측 불가능한 외부적 파장을 최소화하겠다는 의지로 볼 수 있다. 미-중 갈등과 코로나19 사태 등 외부의 불확실성을 최대한 피하면서, 내수를 중심으로 중국 경제 성장에 새로운 동력을 불어넣겠다는 뜻이다. 중국 지도부가 ‘국내 순환’을 강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1997~98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도 주룽지 당시 총리는 “국내 수요 확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원자바오 당시 총리가 “국내 수요 확대가 최우선 과제”라고 말했다. 위기 때만 그런 게 아니다. 2012년 집권 직후부터 시 주석은 고도성장기에 굳어진 특정 부문에 대한 공급 과잉을 줄이기 위한 이른바 ‘공급 측 구조 개혁’과 내수 확대를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쌍순환’이란 용어만 새로울 뿐이란 뜻이다. 관영 <신화통신>도 “수출과 (인프라) 투자 중심 경제를 재조정해 내수와 기술 혁신에 집중하는 것은 지난 10년 남짓 추진해온 정책방향과 일치한다”고 전했다.

미-중 갈등, 산업 공급망 흔들고, 수출 주도형 ‘국제대순환’ 한계 그럼에도 중국 지도부가 이 시점에 ‘쌍순환’을 강조하고 나선 데는 이유가 있다. 코로나19 사태는 기존 산업 공급망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미-중 갈등 증폭 속에 두 나라 경제의 탈동조화(디커플링) 가능성도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세계의 공장으로 장기간에 걸쳐 대량생산을 주도해온 중국으로선 세계 경제의 기존 소비·공급망에 교란이 생긴 지금, 좀 더 유연하게 바뀐 환경에 적응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위융딩 전 인민은행 통화정책위원은 지난달 29일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에 기고한 글에서 “쌍순환은 전혀 다른 경제 모델이 아니라 이미 진행되고 있는 변화를 개념화한 것”이라며 “쌍순환의 맥락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1970년대 말 개혁·개방 이후 중국 경제의 발전 과정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개혁·개방 초기 중국 경제발전의 최대 걸림돌은 외환보유고 부족이었다. 외환보유고가 부족하면 수출산업을 발전시킬 수 없고, 수출이 늘지 않으면 외환 부족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중국이 택한 돌파구는 ‘위탁가공’이었다.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EM)을 통해 낙후했던 남동부 해안지역이 급속한 발전을 이뤘다. 외국 기업이 생산한 부품과 중간재를 수입해 완제품을 만들어 수출했고, 이를 통해 만들어진 부가가치는 고스란히 중국 경제 발전의 밑돌이 됐다. 수출이 늘면서 외환보유고가 쌓였고, 이는 더 많은 중간재 수입과 완제품 수출로 이어졌다. 막대한 저임금 숙련노동자는 최고의 수출경쟁력이었다. 수입-수출의 선순환 구도가 만들어졌다. 중국 경제학자 왕젠은 1988년 일찌감치 이 같은 중국의 수출 주도형 발전 모델을 ‘국제대순환’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성과는 눈부셨다. 2013년 총교역량 4조2천억달러를 돌파하며 세계 최대 무역대국으로 떠올랐고, 개혁·개방 불과 30년 만인 2010년엔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떠올랐다. _______
내수 확장 ‘국내대순환’ 추진…민간소비 육성·혁신기술 국내 생산 하지만 중국 경제의 몸집이 커질수록 국제대순환 모델의 한계도 명확해졌다.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중국이 수입하는 중간재와 부품 값은 갈수록 높아졌고, 중국이 수출하는 완제품 값은 낮아졌다. 중국의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는 세계 각국의 강력한 보호주의적 대응을 불렀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들어 격렬해진 미-중 갈등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무역과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6년 각각 65%와 36%로 정점을 찍은 뒤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중국의 경제 성장률도 갈수록 낮아졌다. 중국 지도부는 그해 시작된 제11차 5개년 규획 당시에도 “중국의 경제 성장은 국내 수요, 특히 민간소비 수요를 기반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쌍순환이 과거와 다른 것이 있다면, 내수 증가가 수입이 아닌 국내 생산 증가와 연계돼 있다는 점이다. 특히 고품질 소비재와 반도체를 포함한 제조업 핵심 장비와 부품에 대한 수입 의존도를 줄이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반영돼 있다. 앞선 위기 국면에서 내수를 강조한 것이 중국 경제의 지나친 수출 의존도를 줄이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면, 쌍순환은 고품질·첨단제품에 대한 수입 의존도를 줄이고 자급력을 높이는 데 방점이 찍혔다는 말이다. ‘기술굴기’를 내세워 첨단기술 육성을 강조했던 ‘중국제조 2025’의 입김이 느껴진다. 쌍순환이 본격 추진된다면, 그간 중국에 중간재를 수출해온 한국·일본·독일 등에 타격이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inhwan@hani.co.kr
빈부격차 해소 없인 ‘헛바퀴’ 쌍순환
지난달 초 중국 국무원에 딸린 정책연구기관인 ‘발전연구중심’이 펴낸 야심찬 보고서가 공개됐다. 오는 2032년이 되면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의 경제대국이 될 것이란 주장이 핵심이었다. 이 단체는 보고서에서 “내수 시장 중심의 새로운 발전 전략을 채택한 중국의 부상을 아무도 막을 수 없다”고 강조했는데, 향후 중국 경제의 ‘불안정 요인’으로 빈부격차를 첫손에 꼽았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도 빈부격차는 오랜 난제다. 개혁·개방 이후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고소득층이 크게 늘어났지만, 계층·지역 간 소득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의 자료를 보면, 5등급으로 나눴을 때 지난해 중국 상위 20% 고소득층의 가처분소득은 7만6401위안(약 1316만원)이었다. 한달에 6367위안꼴이다. 반면 하위 20%의 가처분소득은 7380위안(127만원)에 그쳤다. 한달에 615위안꼴로, 상위 20%의 10분의 1 수준에 그친다. 하위 40%에 해당하는 6억1천만명가량의 월평균 가처분소득도 957위안(16만5천원)으로 1천위안을 넘지 못했다.
도시와 농촌 간 소득 격차도 심각하다. 지난해 중국의 1인당 가처분소득은 3만733위안(529만원)을 기록했다. 이 가운데 도시 주민의 가처분소득은 전년보다 7.9% 늘어난 4만2359위안(730만원)이었다. 농촌 주민의 가처분소득은 9.6%가 늘어났음에도 1만6021위안(277만원)에 그쳤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지난해 초 월평균 가처분소득이 2천~5천위안인 인구 4억명을 ‘중산층’으로 규정한 바 있다. 도시 주민의 월평균 가처분소득은 3529위안(60만8천원)인 반면, 농촌지역 주민은 1335위안(23만원)에 그친다. 도시 주민 절대다수가 중산층인 반면, 농촌 주민 절대다수는 빈곤층이란 뜻이다.
그렇다고 도시 주민이 마냥 여유롭게 생활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는 지난 8월 초 “올 상반기 중국의 가구당 부채 비율은 1인당 국내총생산의 59.7%에 이른다”고 전했다. 대출금 상환 압박에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실업 증가, 불안정한 고용·소득 전망 탓에 이들 역시 소비를 늘리기 어렵다. 전반적인 소득 수준을 높이지 않고는 ‘쌍순환’의 핵심인 ‘국내대순환’을 통한 새로운 경제 발전은 어렵다는 뜻이다.
중국 경제 전문가인 마이클 페티스 베이징대 교수는 지난 8월25일 <파이낸셜 타임스>에 쓴 기고문에서 고도성장기 중국의 수출경쟁력이었던 터무니없는 저임금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쌍순환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 경제의 성장은 왜곡된 소득 분배 방식에 지나치게 의존해 왔기 때문에 이를 바꾸는 데는 시간이 많이 들고 고통이 클 수밖에 없다”며 “임금이 오르면 수출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내수(국내순환)를 부양하기 위해선 수출(국제순환)에 일정한 타격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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