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렛 대처(왼쪽) 전 영국 총리와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
메르켈, 1차대전 종전 행사 참석…‘착한 나라’ 신뢰 높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 기념식이 열린 이튿날인 10일 프랑스로 갈 짐을 쌌다. 11일 프랑스에서 열리는 1차대전 종전 기념일에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함께 참석하기 위해서다. 독일 정상이 1차대전 종전 기념일 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 1984년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가 프랑수아 미테랑(오른쪽 사진) 전 프랑스 대통령과 1차대전 최대 격전지였던 프랑스 베르됭에서 만나 양국간 화해를 다짐한 것과 비슷한 상징적 이벤트로 <더 타임스>는 “독일이 유럽연합(EU)을 주도하는 국가라는 것을 보여주는 행사”라고 전했다.
베를린 장벽 붕괴 20년을 맞은 독일은 이제 당당하게 유럽 중심국가로서의 역할에 박차를 가하면서도, 신중함을 잃지 않고 있다. 메르켈 총리의 종전 기념일 행사 참가도 신중한 정치적 계산이 깔린 것이라고 <더 타임스>는 분석했다. 과거에도 독일이 강해지려고 할 때마다 이웃 유럽국가들로부터 우려가 쏟아졌는데, 독일로선 이런 우려들을 잠재우고 ‘선한 독일’에 대한 신뢰감을 높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마가렛 대처(왼쪽) 전 영국 총리와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 은 독일 통일을 강하게 반대했다. 대처 전 영국 총리는 1989년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게 독일 통일을 막아달라고 말했다. 대처 전 총리는 독일 통일이 진행되던 90년 초에는 “모든 유럽이 지켜보고 있다. 누가 2차대전을 일으켰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고도 말했다고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 측근은 아예 “(독일 통일을 보느니) 차라리 화성에 가버리겠다”고도 말했지만 소용 없었다. 프랑스는 독일 통일과 함께 유럽대륙에서 누리던 독점적 지위를 잃게 되는 현상을 피할 수 없었다.
독일은 이제 유럽 최대의 경제와 인구로 유럽연합을 주도하고 있다. 자신감도 커졌다.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 기념 행사가 열린 베를린에서는 유럽연합 깃발은 거의 볼 수 없고 대부분 독일 국기가 펄럭이고 있었다고 <더 타임스>는 전했다. 칼 테오도르 구텐베르크 독일 국방장관은 최근 아프가니스탄의 독일군 참여를 이야기하면서 ‘전쟁’이라는 표현을 썼다. 전쟁이라는 표현을 극도로 삼갔던 과거와 비교되는 대목이다.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우파 연정도 독일이 “외부로 뻗어나가는 것에 대해 적극적”이라고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유럽 언론들의 이런 시각엔 과거 세계대전의 기억에서 나오는 경계심 또한 엿보인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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