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뒤 자유민주당 10% 상승 지지율 급변
영국 총선 사상 처음 실시된 텔레비전 토론이 영국 정치판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지난달 15일, 22일, 29일 세차례 열린 주요 3당 대표들의 티브이 생방송 토론 이후 자유민주당이 급부상하면서, 영국의 정치판도는 전통적인 ‘2강’ 구도에서 자민당이 합세해 각축을 벌이는 ‘삼두체제’로 바뀌었다.
여론조사업체 ‘유거브’(YouGov)의 집계를 보면, 올들어 첫 토론 이전까지 100여일 동안 3당의 지지도는 보수당 37~40%, 노동당 30~32%, 자민당 17~20% 범위에서 거의 변동이 없었다. 그러나 첫 토론 직후 지지율은 의미있는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1일까지 보름새 앞다퉈 쏟아진 여론조사에서 보수당이 31~34%, 노동당이 27~29%로 조금씩 떨어진 반면, 자민당은 28~31%로 10% 포인트나 지지율을 끌어올렸다.
1960년 미국 최초의 대통령 티브이 토론에서 젊은 존 F 케네디가 노회한 리처드 닉슨을 몰아댓듯, 닉 클레그 자민당 당수는 고든 브라운 총리(노동당)와 데이비드 캐머런 보수당 당수를 싸잡아 ‘낡은 정치인’으로 몰아붙였다.
특히 자민당의 신입 지지층이 노동당과 보수당, 기타 정당 지지층에서 고르게 옮겨온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런 변화는 정권을 독과점해온 노동-보수 양당체제에 대한 강력한 견제일 뿐 아니라, 제3의 정당에 대한 영국 국민들의 관심과 기대가 부쩍 커졌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여론조사 결과 이번 총선에서 1974년 이후 36년만에 과반의석 정당이 없는 ‘헝 의회’의 출현이 확실시되는 것도 그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
티브이 토론은 6일 투표에서도 위력을 발휘할 전망이다. 마지막 티브이 토론을 주관한 <비비시>(BBC)가 유권자 2500명에게 ‘무엇이 투표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물어본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3%가 텔레비전을 꼽았다. 신문(47%), 라디오(27%), 친구·가족(25%)이 그 뒤를 이었으며, 정당 홍보 인쇄물은 19%에 지나지 않았다.
영국에선 1964년 총선때 티브이 토론이 처음 제안됐다. 그러나 당시 집권 보수당은 “(티브이 총선은) 대중음악 순위를 가리거나, 각본대로 움직이는 최고의 배우를 뽑게 될 것”이란 이유로, 야당 노동당은 “토론의 예측불가능성”을 이유로 거부했다. 1979년엔 제임스 캘러건 총리(보수당)가 현직 총리로는 처음으로 티브이 토론을 수용했으나, 당시 보수당 대표였던 마거릿 대처 전 총리의 반대로 무산됐다. 또 1997년 총선땐 존 메이저 당시 총리가 먼저 토론을 요구했지만 토론 방식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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