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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독일, 통일비용 넘어 지속가능한 경제 화두로”

등록 2010-10-15 10:09수정 2010-10-15 10:16

(왼쪽부터) 하이데 지모니스·우도 지모니스·지외르지 셀·김누리
(왼쪽부터) 하이데 지모니스·우도 지모니스·지외르지 셀·김누리
‘공동의 미래’ 통독 20년을 말한다

20년전 서독에 의한 일방적 흡수합병식의 독일 통일은 잘못된 통일로 비판받았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런가? 독일의 진보적인 정치인·학자들은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있지만, 통일은 성공적이었다”고 말한다. 독일은 그 잘못된 통일을 바로잡아가며 ‘분단의 과거’에서 ‘공동의 미래’로 가고 있다. 김누리 중앙대 독일연구소장이 지난 11일 독일 사민당의 유력한 여성 정치인 하이데 지모니스 전 슐레스비히 홀스타인 주지사와 그의 남편인 경제학자 우도 지모니스, 그리고 사회학자인 기외르기 첼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은 중앙대와 독일 프리드리히 에버트재단이 14~15일 개최한 ‘독일통일 20주년 기념 국제심포지엄’ 참가를 위해 방한했다.

하이데 지모니스

대기업의 시장 전횡 심각
동·서독 체제 반성 본격화


우도 지모니스

서독, 흡수통일 방식이
통일뒤 사회 위기 불러

지외르기 첼

독일 자본 강해졌지만
독일 경제는 약화됐다

김누리

성급한 화폐통합탓에
막대한 통일비용 소요돼

김누리(이하 김) 스무살이 된 통일독일은 정상적인 성인으로 성장했다고 보는가?

하이데 지모니스(이하 하이데) 통일독일은 성인답게 성장했다. 물론 중간에 두통도, 발작도 있었고, 이따금 복통도 앓았지만 말이다. 통일의 서곡은 황홀했다. 우리는 샴페인과 꽃을 들고 마치 산책을 하듯이 거리로 몰려나갔다. 그러나 곧 볼멘 소리가 터져나왔다. 통일비용이 너무 비싸다. 저들(동독사람)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배우려하지 않는다. 저들은 우리를, 우리는 저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말한다.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있지만, 그래도 통일은 성공적이었다고.

우도 지모니스(이하 우도) 통일은 아직 완성된 게 아니다. 20년 전 빌리 브란트 전 서독총리는 이렇게 말했다. “한 뿌리에서 나온 것은 함께 자란다.” 당시에는 이른 감이 있었으나, 이제 현실이 되었다.

지외르기 첼(이하 지외르기) 당시 헬무트 콜 총리는 ‘번창하는 나라’를 약속했지만, 환상임이 판명되었다. 비판적 지식인들은 동서독이 함께 성장하려면 최소한 한 세대는 지나야 한다고 보았다. 오늘날 젊은 세대를 보면, 이들은 새로운 독일을 아무 편견 없이, 아주 정상으로 보고 있다. 물론 실업과 사회적 격차 등 많은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지만, 동독인과 서독인 대다수가 이전보다 더 만족스런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여러분들이 서독 출신이기에 그런거 아닌가? 예전에 여러 차례 얘기를 나눈 동독 지식인들은 통일에 대해 보다 비판적이었다. 예컨대 비텐베르크 교회 목사인 프리드리히 쇼를렘머는 통일이 ‘자유에로의 몰락’이었고, 작가인 다니엘라 단은 ‘파라다이스로의 추방’이었다. 통일과정이 얼마나 힘겹게, 모순적으로 진행되었는가를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하이데 그런 비판을 충분히 이해한다. 동독인들은 통일과정에서 익숙하던 생활환경을 포함해 자신의 정체성을 이루는 거의 모든 것을 포기해야 했다.

독일 통일 20년 결산 좌담
독일 통일 20년 결산 좌담

우도 분명한 것은 서독인들이 동독사람들의 의견을 묻지 않았고, 함께하자고 제안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다. 동독 지식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들의 실망을 전적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당신들이 동독과 서독 체제의 혼합형태를 기대했기 때문에 실망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당신들은 동독 사회주의와 마찬가지로 서독 자본주의를 원치 않았는데, 어떻게 이 둘을 결합할 수 있단 말인가. 정말로 제3의 길이 가능했던가.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많은 문제들, 지난 몇년간의 위기들은 동반자적 협력체제의 결여에서 생긴 결과들이다. 통일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했다고 주장할 수는 있을 것이다.

지외르기 동독인들은 통일이 정치 행정 등 각 분야에 끼칠 엄청난 파장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했다. 모든 요직을 서독인들이 차지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모든 동독인들이 단지 물질적인 것만을 원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정치적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동독인들도 많았다. 특히 동독의 시민운동가들이 그랬다. 그러나 시장의 독재를 수반한 시장경제가 승리했다. 다수의 동독인들이 그것을 원했기 때문이다.

독일통일은 정치 분야에서 어떤 변화를 몰고 왔는가.

하이데 정당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정치지형이 변했다. 5당 체제가 형성되면서 결코 절대다수 정당이 나올 수 없는 구도가 생겨났다. 여성 문제에 있어서도 변화가 있었다. 여성 문제가 동독지역에서 더욱 성공적으로 해결됨에 따라 하나의 경쟁구도가 형성되었다. 동서독 체제 중에서 어떤 체제가 더 나은 것이었냐는 물음이 이제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한 것이다.

경제 분야에서는 성급한 화폐통합이 동독경제를 붕괴시켰고, 다시 이를 살리기 위해 엄청난 통일비용이 들어갔다. 전체적으로 독일경제는 통일로 인해 더 강해졌는가, 아니면 약화되었는가?

우도 통일 초기 유행하던 최악의 말은 ‘청산’이다. 이른바 ‘신탁청’은 동독의 기업과 공장을 파산시킬 임무라도 떠맡은 것처럼 활동했다. 생존 능력을 갖추고 있던 수만개의 기업이 파산했다. 그러나 그 이면도 있었다. 몇 년이 지나자 새로운 좋은 것들이 생겨났다. 처음에는 깊은 나락에 빠졌으나,시간이 지나자 비약적인 발전이 뒤따랐다. 많은 동독 기업이 지금 세계 최고의 수준에 있다. 그것은 경제학자 슘페터의 말처럼 ‘창조적 파괴’였다고 할 수 있다.

독일경제는 통일로 인해 혹은 통일에도 불구하고 강해졌다는 말인가.

하이데 통일이 지극히 천박한 방식으로 진행됐음에도 강해진 것이다. 그러나 대기업들은 시장을 지배하고, 거리낌없이 전횡을 하고 있다. 젊은이들은 더 이상 일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임신한 여성들은 직장에서 쫓겨나고 있다. 해고가 금지돼 있음에도, 출산율이 낮다고 투덜대면서도 여성이 임신하면 곧바로 쫓아내려 한다.

지외르지 동독 경제가 붕괴되자, 동독지역에는 거대한 진공상태가 생겨났고, 서독 기업들이 동독 시장 전체를 장악했다. 이런 의미에서 동독지역은 서독 자본을 강화하는 데 엄청난 구실을 했다. 통일 이후 10년 동안 독일의 거대 은행, 특히 도이체방크는 전독일 이윤율의 75%에 달하는 엄청난 이윤을 올렸다. 동독인들이 자본주의의 작동방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 거대 자본은 노동자와 중소기업을 희생한 대가로 최대한의 이윤을 올리고 있다. 통일로 독일 자본은 강해졌지만, 독일 경제 전체는 약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통일 이후의 잘못된 경제정책 때문이다. 이제 사회적·생태적인 측면에서 지속 가능한 경제구조를 새로이 만들어야 할 시점이 됐다.

2010년은 독일에서는 통일 20돌을 맞는 해이지만, 한국에서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에 이루어진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10돌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독일통일의 교훈은 무엇인가?

하이데 올바른 시기에 올바른 물음을 제기해야 한다. 무엇이 우리에게 가치가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고, 무엇을 줄 수 있는가. 무엇인가를 얻으려면 무엇인가를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가운데 자기가 원하는 것을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독일 통일을 통해 배운 것이다

우도 정부 수준에서 일정한 정도의 상호이해가 필요하다. 대립이 지속되면, 상황은 점점 더 어려워질 수 있다. 그러나 통일을 위해 정부간 상호이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의사이다. 동독인들은 “우리가 이 나라의 주인이다”라고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이것이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 남과 북의 시민들이 통일을 원한다는 소망을 목청껏 외쳐대기 시작하면 지배자들도 이를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지외르지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 못지않게 소련의 변화가 없었다면 독일 통일은 이뤄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두가지 전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첫째 북한에서도 민주적 시민사회가 형성되어야 한다. 둘째는 중국의 변화가 북한의 변화를 견인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리 강태호 기자 kankan1@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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