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테러범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32)
브레이비크, 과대망상·편집증 등 뒤섞여…성장과정도 문제
편집증, 과대망상, 충동조절 장애, 과도한 나르시즘…. 정신질환의 전형적인 유형들이다.
25일 법정에서 구속영장 심리를 마치고 나온 노르웨이 테러범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32·사진)는 차 안에서 정면을 응시한 채 꾹 다문 입가로 야릇한 웃음을 흘렸다. 범행 이후 처음으로 전세계 언론의 카메라에 포착된 이 ‘살인자의 미소’에 사람들은 다시 한번 경악했다.
“무슬림들로부터 유럽을 구원하겠다”며 끔찍한 학살극을 벌인 브레이비크의 정신 상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브레이비크는 비뚤어진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기 앞서 나름의 논리를 가다듬고, 몸을 가꾸고, 사격 연습을 하고, 제복과 무기를 고르는 등 마치 신성한 제의를 치르는 사제처럼 움직였다. 얼핏 보면 대단히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계산된 행동이다.
그러나 브레이비크가 작성한 1500여쪽 분량의 ‘2083: 유럽 독립선언’과 그의 성장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신질환에 가까운 심리 상태가 엿보인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앞으로 재판 과정에서 브레이비크에 대한 전문가들의 정신감정 결과에 따라 예상치 못한 논쟁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영국의 법정신의학 전문가인 제러미 코이드는 25일 <비비시>(BBC) 방송에 “(브레이비크의 주장에) 모든 종류의 극우 이데올로기가 뒤엉켜있는 것으로 미뤄, 그가 중증의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코이드는 “그의 테러는 극우적 신념이 편집증 또는 망상질환과 결합된 것”이라며 “망상질환은 처음엔 별로 특이할 게 없는 믿음도 머릿속에서 갈수록 엄청나게 그릇된 방향으로 진행되는 특징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법의학 심리학자인 이안 스티븐도 “브레이비크의 선언문은 대단히 꼼꼼하게 생각을 발전시켜온 사람이 쓴 것”이라며 “지금까지 읽은 가장 오싹한 문건”이라고 평가했다.
영국 <데일리 메일>은 26일 “평범한 소년 브레이비크가 이민자를 증오하는 괴물로 변한 이유”를 그의 성장과정에서 찾았다. 한 살 때 부모가 이혼한 뒤 15살 이후로 아버지와 한 번도 접촉이 없었던 점, 유일한 단짝이었던 파키스탄 무슬림 친구와 헤어진 뒤 공교롭게도 파키스탄 불량배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던 청소년 시절 등이 근거다.
그러나 브레이비크의 범행 동기는 성장기의 경험에서 비롯한 트라우마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영국 정신과 전문의 시어도어 달림플은 26일 영국 일간 <익스프레스>에 “브레이비크의 마음 속엔 분노, 자기중심주의, 유명해지려는 욕망, 삶의 의미 추구, 인간관계 형성 장애 등 여러가지 요인들이 복합돼 있다”고 분석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브레이비크가 탐닉했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 ‘콜 오브 듀티’ 등 온라인 게임 2종과 ‘사자왕’으로 불린 리처드 1세, 템플기사단 등을 그의 정신세계를 지배한 ‘4대 문화적 망상’으로 꼽았다. 온라인게임은 가상의 세계에서 괴물들을 물리치고 공주를 구하거나 온갖 난관을 헤치고 임무를 완수하는 내용으로 진행된다. 리처드 1세와 템플기사단은 12세기 초 ‘무슬림 이교도’를 정벌하는 십자군 원정에서 이름을 떨친 뒤 역사 소설이나 영화의 단골 소재가 됐다. 조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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