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냉전의 상징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지 13일로 50주년을 맞았다. 베를린 장벽은 1989년 붕괴되며 독일 통일과 사회주의권 붕괴의 봇물이 됐으나, 그 전 28년 동안 동서냉전의 최전선으로 존재했다.
베를린시는 이날 장벽이 세워졌던 베르나우어가에서 기념식 등 여러 행사를 열었다. 클라우스 보베라이트 베를린 시장은 “베를린은 이날을 최근 역사에서 가장 슬픈 날로 기억하고 있다”며 “장벽은 역사가 됐으나, 우리는 이를 잊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기념식에 참석한 크리스티안 불프 독일 대통령은 “장벽은 이를 만든 사람들의 공포의 표현이었다”며 “이 장벽이 상징하던 당시의 세계상황은 많은 사람들에게 되돌릴 수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자유는 정복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어떤 장벽도 결국 자유의 의지 앞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날 정오에는 장벽을 넘다가 숨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묵념도 베를린시 전역에서 거행됐다. 장벽을 넘어 서베를린으로 오려다 숨진 이들은 1961년 8월24일 구엔테 리트핀을 시작으로 1989년 2월6일 크리스 구에프로이까지 적어도 136명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수는 아직 논란중이다. 희생자 가족단체들은 700명이 넘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베를린 장벽은 1961년 8월13일 동독 당국에 의해 철조망으로 처음 만들어진 뒤 나중에 160㎞ 장벽으로 진화됐다. 탈출자들을 막으려는 300개의 감시탑도 세워졌고, 일부 지역에서는 지뢰도 심어졌다. 동독 당국은 장벽을 ‘반파시스트방어 성벽’이라고 부르며, 파시스트 서방을 막기 위한 장벽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장벽은 이제 철거돼 일부 지역에서 역사적 기념물로만 남아있으나, 부유한 서쪽과 가난한 동쪽을 가르는 상징으로 여전히 남아있기도 하다고 <비비시>(BBC)는 전했다. 동독 교사 출신으로 여전히 동베를린에 살고 있는 브리기타 하인리히는 통일 이후에도 “내가 지금까지 사귄 서독 사람들의 이름을 한 사람도 댈 수 없다. 정말로 그들과 사귈 수 없다”며 통일 이후 상황에 아직도 적응할 수 없음을 고백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