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구호단체에 양육 요청 크게 늘어
“IMF·EU의 긴축조처 압박이 비극 불러”
“IMF·EU의 긴축조처 압박이 비극 불러”
40대 안팎의 가스파리나토스 부부는 그리스의 저소득층이다. 지난가을 총파업 시위가 격렬했던 서부 항구도시 파트라스에 살고 있는 이들 부부는 6명의 아들과 4명의 딸을 뒀다. 가장인 디미트리스의 월급 960유로(약 143만원)와 두 달에 한 차례 나오는 복지지원금 460유로(약 69만원)의 수입으로 이들은 주변 빵집이나 식료품가게에 외상 빚을 지면서 근근이 살아왔다.
하지만 경제위기는 이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았다. 외상을 받아주던 동네 가게 주인들마저 생업을 작파하고 시위에 참가할 만큼 경제 사정이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디미트리스는 최근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언론 인터뷰에서 “빵을 살 2유로의 여유도 없는 처지가 됐다”며 “아이들 4명을 2~3년 동안 정부 보육시설에 보내는 게 낫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결국 이들 부부는 4명의 아이들을 보육시설에서 맡아달라고 시 당국에 요청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28일 “그리스 경제위기로 부모가 아이들 양육을 포기하는 비극이 일어나고 있다”며 “구호단체들은 앞으로 이런 일이 늘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전했다. 그리스 경제위기가 저소득층은 물론 중산층 가정까지 해체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파트라스시 사회복지 책임자인 테오하리스 마사라스는 “지난해 성탄절에 400가구에 음식 지원을 했는데, 올해는 1200가구가 음식 지원을 요청했다”며 “이들 대다수는 자신들이 다니던 가게나 기업이 문을 닫기 전까지 멀쩡한 일자리를 갖고 있던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아이들을 정부가 맡아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새로운 현상”이라며 “이들의 가정을 방문하면 제3세계에서나 보던 가난과 불결함을 목격하게 돼 내 눈을 믿기 어려운 지경”이라고 덧붙였다.
그리스 일간 <카티메리니>는 최근 구호단체 ‘에스오에스 어린이 마을’에 아이를 맡아줄 것을 요청한 가정이 500가구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제3세계가 아닌 같은 유럽 국가에서 현실화되고 있는 이런 현상에 유럽인들의 충격은 더 크다.
그리스 구호단체, 노동조합 등은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연합(EU)의 압박으로 이뤄진 긴축 조처 때문에 사회안정의 구심점인 중산층과 가족이 동시에 해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스 공무원노조 관계자는 “지금껏 국제통화기금과 유럽연합이 요구한 긴축 조처들이 어떤 비극적 결과를 불렀는지에 대해 침묵하려는 음모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 당국자들은 구조개혁으로 그리스 경제를 더 나은 체질로 바꾸겠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신생아가 유기되고 아이들이 구호단체에 떠맡겨지는 현실은 못 본 척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스파리나토스 가족의 사연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가족제일주의 전통을 자랑스러워하는 그리스 여론이 들끓으면서, 이들 가족은 독지가의 후원으로 가까스로 생이별을 피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리스 가족 해체 위기가 취약계층뿐 아니라 중산층에게로 확산되는 추세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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