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원리포트 l 베를린]
유럽경제위기 불안심리
3년새 임대료 36% 뛰어
유럽경제위기 불안심리
3년새 임대료 36% 뛰어
“옛날 살던 곳을 지나칠 때면 마음이 착잡해집니다.”
안드레아스 켈러(63)는 몇 달 전 반평생 보금자리였던 베를린 프리드리히하인 지역을 떠나, 변두리 지역인 리히텐베르크에서 노년을 보내게 됐다. 집주인이 집을 수리한 뒤 임대료를 대폭 인상하자 실업수당 수령자인 그로선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독일 대도시 도심지역 기존 세입자들이 외곽으로 쫓겨나고 있다. 베를린의 경우, 지난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임대료가 36% 가까이 올랐다. 지난 2~3년간 새 세입자 임대료가 55%나 인상된 베를린 노이쾰른 지역은 원래 범죄율이 높고 저소득층 외국인의 비율이 높아 타지역 사람들이 방문조차 꺼리던 곳이다. 대도시에 불어닥친 부동산 열풍은 3년 전만해도 상상조차 힘들었던 노이쾰른 지역의 고급주택화(gentrification)를 현실로 만들었다.
이는 독일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현상이다. 통일 직후 베를린의 부동산 가격이 잠시 꿈틀댔던 걸 제외하면 지난 30년 동안 독일의 부동산 가격은 실질소득에 비해 오히려 떨어졌다. 저소득층을 위한 저렴한 사회임대주택의 공급이 충분했고, 지방분권화가 철저해 특정 도시로의 쏠림현상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또 슈뢰더 정권의 노동시장 유연화 조처로 지난 10년간 실질 임금이 오르지 않았던 것도 부동산값 안정의 한 요인이다.
특히 베를린은 인구의 40%가 연금수령인이거나 실업수당자다. 변변한 산업체도 없는 가난한 도시로 통한다. 하지만 뉴욕, 모스크바, 파리 등에 비해 파격적으로 낮은 임대료 때문에 세계 곳곳에서 가난하지만 다양한 예술가들이 모여들었다. <뉴욕타임스>는 이런 베를린을 ‘세계에서 가장 핫한 도시’라며‘80년대의 뉴욕과 같은 분위기’라 칭송하기도 했다.
이런 역사를 뒤로 한 최근 대도시의 부동산 열풍은 유럽 경제위기에 따른 불안 심리를 반영한다. 독일인들은 인플레이션으로 은행자산의 가치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부동산 투자로 몰린다.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남유럽 경제위기 국가의 부자들도 개인자산을 독일 부동산에 투자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의 저금리 정책도 이 열풍에 한 몫하고 있다.
한주연 통신원 juyeon@gmx.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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