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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임시직 0시간 파트타임’ 영국 왕실의 ‘노예계약’

등록 2013-07-31 19:47수정 2013-07-31 22:35

매년 버킹엄 궁전 개방기간 채용
근무시간 약정없고 다른 부업 금지

스포츠용품·영화상영관 체인점 등
“20만명 ‘0시간 노동자’ 추산”
노동계 ‘나쁜 일자리’ 논쟁 후끈
‘로열 베이비’ 탄생으로 환호를 누리는 호화로운 영국 왕실 축제 뒤편으로 왕궁 소속 직원들이 수년째 ‘0시간 파트타임’ 노예계약에 신음해온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영국에선 ‘스포츠 다이렉트’라는 유명 스포츠용품 체인점이 2만명 직원 모두를 이런 식으로 고용한 사실이 드러나 노동유연화에서 비롯된 ‘나쁜 일자리’ 논쟁이 달아오른 상황이다.

30일 영국 <가디언>은 “영국 왕실이 여름철 버킹검 궁전 개방 기간에 기념품 판매, 방문객 맞이, 감시 업무 등에 350명의 임시직 직원을 추가로 채용했는데, 이들 모두가 0시간 파트타임 계약을 맺은 사실이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영국 왕실은 여왕이 여름휴가 두달 동안 런던의 버킹검 궁전을 비우면, 관광객들에게 궁전 전시실 등을 개방해왔다.

0시간 파트타임 계약이란 노동시간을 약정하지 않고 임시직 계약을 한 뒤 일한 만큼 시급을 주는 노동계약이다. 주나 월 단위로 인력 수요에 따라 노동시간을 정하고, 일한 시간만큼 돈을 줘 고용주가 인건비를 최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계약을 맺은 노동자는 안정적인 소득 예측이 불가능해 신용카드 사용이나 은행 대출 등 금융 혜택을 누리기 어렵고, 유급 휴가나 병가 등도 인정받기 어렵다. 게다가 노동자가 다른 부업을 하지 못하도록 계약서에 명시하는 경우가 많아 노동자를 사실상 24시간 대기조로 묶어둔다.

<가디언>은 “2009년 근로계약서 사본을 확인한 결과 ‘방문객 관리자가 근로시간을 통지해 줄 것이며, 근무 시간대와 근무 총량은 수요에 달려 있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고 전했다. 여기에는 문서상의 허가없이는 다른 부업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왕실은 당장 자기네 계약 형태는 0시간 파트타임 계약으로 보기 어렵다며 해명과 파문 수습에 나섰다. 왕실 대변인은 “근무 총량과 시간대를 보장하지 않는 것은 맞지만 직원들의 시간 계획을 위해 한달 전에 근무표를 제공하고 있으며, 3~4개월 단위로 계약기간도 명시하고, 출근날 점심 제공 등 각종 복지 혜택도 제공한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사치스런 왕실 생활에 가려진 노동자들의 눈물은 비난 여론과 나쁜 일자리에 대한 사회적 논쟁을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은 최근 노동유연화 흐름이 거세져 0시간 파트타임 계약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영국 통계청은 이런 형태 노동자가 20만명이라고 추산하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으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라고 <가디언>이 전했다. 보수당 정부의 ‘복지 축소’ 정책 탓에 실업자가 이런 나쁜 일자리 제안을 거절하면 실업급여를 박탈당하는 상황에 몰리는 점도 사회적 약자들을 노예계약에 밀어넣고 있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영국에서 둘째로 큰 복합영화상영관 체인점으로 80개 극장을 보유한 ‘씨네월드’의 고용인력 4500명 가운데 80%가 0시간 파트타임 계약 직원이다. 영국의 대표적 국립 미술관인 테이트 갤러리도 모든 계약직 직원을 이런 형태로 채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노동계와 정치권을 중심으로 0시간 파트타임 노동계약의 적법성 여부를 재검토하라는 주장이 거세지고 있다. 영국공공서비스노조(UNISON)의 데이비드 프렌티스 사무총장은 “0시간 파트타임 계약은 노동자들이 하루 단위 일거리를 얻으려고 공장 정문 앞에 줄을 서던 암흑시대로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것”이라며 “이를 불법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세라 기자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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