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눈엣가시’였던 반정부 활동가가 횡령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판결 직후 모스크바 시내에선 이에 항의하는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으나 두 시간여 만에 경찰에 진압됐다.
모스크바 지방법원은 30일 변호사이자 유명 블로거인 알렉세이 나발니(38)와 그의 동생 올레크에게 프랑스 화장품 회사 이브 로셰 러시아 지사의 회삿돈을 횡령하고 돈세탁한 혐의로 각각 3년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하고 440만루블의 배상금 지급을 명령했다고 러시아 <타스> 통신 등이 보도했다. 알렉세이는 집행유예를 함께 선고받았으나 올레크는 법정구속됐다. 나발니 형제는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이브 로셰와 또다른 회사 등 2개 기업에서 모두 3100만루블(약 6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아왔으나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알렉세이 나발니는 2011년 총선 이후 푸틴 대통령의 3기 집권을 규탄하는 야권 시위를 이끌며 푸틴의 최대 정적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2월 소치 동계올림픽 직전엔 올림픽 시설 건설 과정에서 정부 관리들과 국영기업들의 대규모 비리를 폭로해 주목받았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가택연금 상태다. 나발니는 지난해 9월 모스크바 시장 선거에 출마해 27%의 득표율로 2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30일 판결 직후 나발니의 지지자 2000여명은 영하 15℃의 혹한에도 모스크바 도심에서 “정치적 판결”이라며 항의시위를 벌였으며 130여명이 체포됐다.
나발니는 모바일 메신저에 “내가 구금상태라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그들(푸틴 집권세력)은 아무도 감금할 수 없다”는 글을 띄웠다. 또 라디오 방송 <모스크바의 메아리> 인터뷰에선 “지금의 문제는 나와 동생에 관한 것이 아니라 러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불의에 관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판결은 나발니가 2018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려는 야심을 꺾으려는 시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은 전했다.
조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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