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브뤼셀 연쇄 테러에 쓰인 폭탄이 지난해 11월 130명의 목숨을 앗아간 파리 테러 때 쓰인 것과 같은 종류라는 게 확인되면서, 유럽 내 테러 세포조직들이 상당한 수준의 사제 폭발물 제조 능력과 원료 물질 공급원을 확보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브뤼셀 국제공항에서 자살폭탄을 터뜨린 범인 중 한 명이 이슬람국가(IS)의 파리 테러 때 사용한 자살폭탄 조끼를 만든 나짐 라슈라위(25)로 확인되면서, 유럽의 대테러 당국은 사제 폭발물과의 싸움이라는 새로운 난제를 안게 됐다.
이번 테러에선 자벤템 국제공항에서 2건, 도심 지하철역에서 1건 등 모두 3건의 자살폭탄 공격이 있었다. 공항 테러범 3명 중 한 명은 폭발에 실패한 뒤 달아났다. 범인들은 대형 여행가방 안에 폭발물을 담고, 손으로 기폭장치를 작동해 터뜨렸다. 그런데 이들을 은신처 아파트에서 공항까지 태워줬다는 결정적 제보를 한 택시 운전사의 경찰 진술에 따르면, 테러범들은 애초 5개의 가방을 실으려 했다. 그러나 택시 트렁크가 좁은 탓에 3개밖에 싣지 못했다. 나머지 2개는 이들의 아파트에서 다른 화학물질들과 총기류와 함께 발견됐다.
미국의 민간 전략정보분석기업 스트랫포는 23일 범인들이 이번 테러를 애초 계획했던 것보다 급하게 서둘렀기 때문에 준비한 살상무기들에 견줘 상대적으로 소규모의 테러에 그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파리 테러처럼 개인화기와 폭탄을 함께 사용했다면 훨씬 더 아찔한 참극이 벌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범인들이 사용한 폭발물은 ‘트라이아세톤 트라이페록사이드(TATP·티에이티피)’ 화합물로 밝혀졌다. 아세톤과 과산화수소수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학물질로 만든다. 재료 입수와 제조 방법이 비교적 쉽고 폭발력이 매우 강력해 ‘악마의 어머니’라는 별칭이 붙었다. 게다가 폭탄의 주요 재료인 니트로겐을 쓰지 않아 보안검색이나 적발이 쉽지 않은 까닭에 테러범들이 주로 사용하고 있다. 브뤼셀 테러범들의 아파트에서도 수백 리터의 아세톤과 페록사이드가 발견됐다.
티에이티피는 그러나 화학적으로 매우 불안정해 화합물 상태에서 보존기한이 짧으며, 작은 충격에도 폭발해버릴 만큼 민감하다. 이 때문에 사제폭탄 제조 전문가는 테러 조직에서 ‘귀한 몸’ 대우를 받는다. 브뤼셀 테러범들이 제조와 취급이 매우 까다로운 티에이티피를 대량 생산한 것도 나짐 같은 폭발물 제조 전문가가 있어 가능했다.
스트랫포는 또 “이들의 은신처에서 대량의 아세톤과 록사이드가 발견된 사실은 테러 세포조직들이 사제 폭발물 제조에 필요한 화학물질의 공급원을 확보했다는 것을 시사한다”며 “그 공급원을 색출해 차단하는 게 이번 사건 수사에서 또하나의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조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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