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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달러 블랙홀’로…신뢰 붕괴→실물경제 악화 치달아

등록 2008-10-07 19:16수정 2008-10-08 02:18

미국 등 신용경색 ‘최악 위기’ 조짐
“누가 쓰러질지…누구도 못믿어” 대출 꺼려

졸릭 세계은행 총재 “위기 꼭짓점 진입

“누구도 어떤 회사가 어떤 위기에 처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거의 모든 이들이 돈을 빌려주기를 두려워하고 있다.”

6일(현지시각) 미국 다우지수가 4년 만에 처음으로 1만선 아래로 추락하고, 유럽 증시가 20년 만에 가장 큰 낙폭을 보이자, <월스트리트 저널>은 문제의 핵심을 이렇게 짚었다. 생존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은행이 부실 위험(리스크)을 키울 수 있는 대출을 기피하고 있다. 체내 혈관처럼 자본의 통로 구실을 하는 은행이 금융위기의 중심에 서서 제구실을 전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전세계가 유동성 확보를 위한 전쟁에 나서면서, 금리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다. 시장의 가늠자라 할 수 있는 리보금리(런던은행간 금리)는 6일 3개월짜리 달러대출이 0.04%포인트 오른 4.33%까지 뛰었다. 돈이 궁해지면서 지난 4월 이후 여섯 달 새 돈을 빌리는 비용이 무려 60%나 오른 셈이다.

김학균 한국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이번 금융위기의 가장 큰 특징은 금융기관 자체가 위기의 당사자라는 점”이라며 “이 때문에 중앙은행들이 돈을 풀지만, 금융기관이 블랙홀처럼 자금을 빨아들일 뿐 시장 전체의 유동성 확충엔 효과가 적다”고 말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며칠 새 기간입찰대출(TAF)을 통해 은행권에 단기 유동성 공급 규모를 3천억달러에서 9천억달러(약 1180조원)로 세 배나 확대한 응급처방이 시장에 별 영향을 주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은행이 몸을 사리는 것은 부실의 늪에 빠진 은행 자체에 대한 시장의 불신이 큰 탓이기도 하다. 미국, 독일 등 전세계가 앞다퉈 예금보장 한도액을 늘린 것은 은행 불신에서 초래될 대규모 예금인출 사태(뱅크런)를 막으려는 고육책이다. 미국 최대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케네스 루이스 최고경영자는 “금융기관들이 이토록 어려움을 겪는 것은 은행 경력 39년 만에 처음”이라고 말했다.


뉴욕증시 다우지수 1만선이 붕괴되는 등 세계 증시가 폭락한 6일 뉴욕증권거래소의 한 직원이 망연자실한 듯 의자에 앉은 채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있다.  뉴욕/AP 연합
뉴욕증시 다우지수 1만선이 붕괴되는 등 세계 증시가 폭락한 6일 뉴욕증권거래소의 한 직원이 망연자실한 듯 의자에 앉은 채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있다. 뉴욕/AP 연합
은행들이 돈줄을 죄면서 불똥은 기업으로 튀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7일 “지난 한 주 동안 판매된 미국 기업어음은 12억5천만달러로 1999년 이후 가장 적다”며 “지난 두 주 동안의 단기 상업대출도 9%나 감소했다”고 전했다. 소비와 고용 등 실물경제 부문에서도 나쁜 지표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져 나오고 있다. 7일 연준이 기업어음(CP)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자금난에 시달리는 기업을 지원하는 초강수를 두기로 한 것은 이런 분위기와 관련이 깊다. 연준은 연말까지 ‘기간입찰대출’(TAF) 규모도 기존의 2배인 9천억달러로 확대하기로 했다.

위기는 언제까지 지속될까? 신용경색이 실물경제를 악화시키고, 다시 나빠진 실물경제가 자산시장과 금융시장에 영향을 끼치는 악순환의 고리에서 세계 경제가 쉽게 빠져 나오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2일 보도자료에서 “현재 미국과 선진국들에서 볼 수 있는 금융시장의 붕괴가 더욱 길고 깊은 경기하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WB) 총재는 “위기의 행렬이 세계 금융시스템의 완전한 붕괴와 정부가 극히 봉쇄하기 어려운 순간인 ‘정점’에 이미 진입한 듯하다”며 “하지만 우후죽순처럼 생긴 문제들이 기업 도산과 은행들의 ‘위기상황’을 유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이 위기의 정점일 수 있지만, 고통은 앞으로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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