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열린 취업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이력서를 기업 관계자들에게 제출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지난 2월 미국에선 65만1천개의 일자리가 사라졌고, 실업률도 25년만에 최고치인 8.1%에 이르렀다. 로스엔젤레스/AFP 연합
미 연준 국채매입 의미
가용수단 바닥…영국·일본 이어 양적완화
하이퍼인플레이션 우려…벌써 금값 ‘들썩’
가용수단 바닥…영국·일본 이어 양적완화
하이퍼인플레이션 우려…벌써 금값 ‘들썩’
일본 중앙은행은 대공황이 한창이던 1932년 이른바 ‘양적 완화’ 정책을 폈다. 정부의 경기부양책 재원을 조달하려 화폐를 마구 발행했다. 하지만 곧바로 두자릿수 물가상승률이 ‘쓰나미’처럼 경제를 덮쳤다. 이후 10여년 동안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지속됐다.
중앙은행이 자국 정부의 채권 등을 곧장 사들여 시장에 공격적으로 돈을 퍼붓는 양적 완화 통화정책은 인플레이션을 불러올 수 있는 탓에 오랫동안 금기시돼 왔다. 미국에서는 1960년대 장기 이자율을 떨어뜨리려 장기 국채를 매입하는 대신 단기 국채를 파는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란 프로그램을 시행한 적이 있다. 그러나 실패로 평가된다.
그런 면에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연준)가 18일(현지시각) 3천억달러(약 418조원)어치의 국채 매입 등 시장에 1조1500억달러를 공급하겠다고 밝힌 것은 충격적이다. <블룸버그 뉴스>는 이날 “연준이 경제 전반의 자금 조달 비용을 낮추려는 전투에서 새로운 전선을 구축했다”고 평했다. 하루 앞서 일본 중앙은행도 자국의 국채 인수 물량을 21조6천억엔(약 315조원)까지 늘려 매입한다고 밝혔다. 영국은행도 750억파운드(약 148조원)어치의 정부채권을 매입할 계획을 한 달 전 발표해, 이번 미국 연준의 조처를 촉진시켰다.
주요국들이 약속한 듯 공격적 통화정책을 펴는 것은 기준 금리를 사실상 ‘제로’(0)로 낮춘 상황에서 가용 수단이 바닥난 탓이다. 미·영·일 3국은 기준 금리를 이미 0~0.5%로 낮췄다. 그런데도 여전히 가계와 기업으로 돈이 흘러가지 않은 채, 신용경색은 풀릴 조짐이 안 보인다. 이 때문에 ‘최후의 수단’이라고 할 만한 발권력을 동원해 공격적으로 통화량 증가를 꾀한 것이다. 디플레이션(저성장 속 물가 하락) 우려가 나올 만큼 인플레이션의 위험성이 잦아든 것도 주요한 배경이다.
밑바탕엔 경제 상황이 심각하다는 진단이 깔려 있다. 데즈먼드 라크먼 미국 기업연구소(AEI) 연구원은 <비즈니스위크>에 “연준이 훨씬 더 공격적으로 가고 있다는 건 좋은 소식이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경제가 훨씬 취약하다는 평가를 반영한다는 점은 나쁜 소식”이라고 말했다.
당장 시장의 반응은 좋다. 투자자문사인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폴 데일 이코노미스트는 연준의 조처를 두고 “내년 경제 회복의 가능성을 높였다”고 호평했다. 하지만 급격한 통화팽창이 언젠가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이란 부메랑으로 돌아올 가능성은 큰 걱정거리다. 연준은 금융위기 전 8940억달러의 자산을 가졌으나, 이번 국채 매입 등으로 내년엔 약 3조달러로 거품이 부풀 전망이다. 이렇게 화폐 공급량이 늘면 돈의 값어치는 떨어지고, 반대로 물건값은 오르기 마련이다. 장기 인플레 우려로 이날 금값은 급등했다.
루이지애나주립대의 조지프 메이슨 경제학 교수는 “만약 은행 시스템이 수리되지 않는다면, 돈을 시장에 퍼붓는 연준의 노력은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1조~2조달러의 부실을 털어내야 할 은행이 대출을 얼마나 늘릴지 의문인데다, 치솟는 실업률과 매출 감소로 가계와 기업이 돈을 꿀 능력은 쉽게 회복되지 않을 전망이다. 투자자문사 지엠오(GMO)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에드워드 챈슬러는 지난 16일치 <파이낸셜 타임스> 기고에서 “(양적 완화는)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특히 채권 보유자들이 이 커다란 실험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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