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30일(현지시각) 밤 크리스토퍼 도나휴 미국 육군 82공수사단장이 아프간에서 마지막 철수하는 미군으로 C-17 수송기에 오르고 있다. 미 중부사령부 제공. AFP 연합뉴스
미군은 예고한 날짜보다 하루 앞당겨 심야에 마지막 수송기를 띄워 20년간 주둔해온 아프가니스탄을 빠져나왔다.
미군 수송기 C-17 5대가 아프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을 이륙한 것은 현지 시각 30일 밤 11시59분(미 동부 30일 오후 3시29분)이었다. 5대의 수송기에 민간인은 없었고 800여명의 미군만 탑승했다. 카불에서 미국의 대피 작전을 지휘한 육군 82공수사단장 크리스토퍼 도나휴 소장과 로스 윌슨 아프간 주재 미국 대사대리가 마지막 탑승자 명단에 올랐다고 케네스 프랭크 매켄지 미 중부사령관은 기자들에게 설명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아프간 철군 시한을 8월31일로 제시했으나,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이하 호라산)의 추가 테러 가능성 등 현지에서 고조되는 위험성을 고려해 보안을 유지한 채 하루 앞당겨 아프간을 떴다. 매켄지 사령관은 “탈레반도 우리의 출발 시간을 직접적으로 알지 못했다”며 “그러나 탈레반은 우리가 떠날 때 사람들이 이륙장으로 몰려오지 못하도록 단단한 외곽을 구축하는 등 매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미군은 공중에서는 공격용 무인기인 MQ-9 리퍼와 B-52 전폭기, 중무장 항공기 AC-130 건십, F-15 전투기 등을 띄워 수송기들을 호위하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고 국방부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마지막 수송기는 이륙 한 시간쯤 뒤 아프간 상공을 벗어났고, 비슷한 시각 매켄지 사령관은 기자회견으로 철군 종료를 발표했다.
아프간 정권을 장악한 탈레반은 미군 완전 철수를 자축했다. 탈레반 대변인은 트위터에 “마지막 미군이 자정에 카불 공항을 떠났다. 우리나라는 완전한 독립을 얻었다”고 밝혔다. 31일 새벽 카불에는 이를 자축하는 총성이 울렸다.
미 국무부는 지난 14일 이후 아프간에서 미국인 약 6000명을 포함해 12만2800명의 미국인과 아프간 조력자와 그 가족, 제3국인을 아프간에서 대피시켰다고 밝혔다. 그러나 긴박하고 혼란스러운 철수에 일부 미국인과 아프간인들은 현지에 남겨졌다. 매켄지 사령관은 “가슴 아픈 게 많다. 우리가 데려오고 싶은 모든 이를 데리고 나오지는 못했다”며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들을 데리고 나올 수 있었는데 아무도 공항에 닿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열흘을 더 있었다 해도 희망하는 모두를 데려올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아프간에 남은 미국인 숫자를 “200명보다 적고, 100명에 가까울 것”이라고 말했다. 아프간 탈출을 희망하는 현지인은 수천명으로 국무부는 추정했다.
블링컨 장관은 아프간 주재 미국 대사관을 인근 카타르의 도하로 옮겨 사무실을 열어둔 채 아프간과 협의해 남은 이들의 대피 문제 등을 다루겠다고 말했다. 그는 “(아프간과) 군사 임무는 끝나고, 새로운 외교 임무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미국인과 외국인, 아프간인들이 아프간을 떠날 수 있도록 돕는 끈질긴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며 “그들에 대한 우리의 약속에 데드라인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은 물론 탈레반에도 적대적인 호라산의 위협이 존재하는 가운데 향후 대피가 원활하게 이뤄질지는 불확실하다. 미국에 협조한 아프간인들을 탈레반이 쉽게 내주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가시지 않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에서 “탈레반이 (미국인, 아프간인 등의) 안전한 통과를 약속했다”며 전세계가 그 약속이 지켜지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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