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국제 국제일반

이탈리아, 프랑스 손잡고 유럽연합 주도 세력 부상 꾀해

등록 2022-01-12 04:59수정 2022-01-12 08:41

드라기 총리와 마크롱 대통령의 ‘드라크롱 동반자’ 구축
독일 숄츠 총리와 ‘3각 체제’ 구성 노려
재정 지출 확대, ‘강한 유럽’ 주장에 힘 실릴 듯
회원국 설득할 지도력 없으면 갈등과 분열 위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왼쪽)과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가 두 나라 간 협력 강화를 위한 조약에 서명한 뒤 악수를 하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 제공 사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왼쪽)과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가 두 나라 간 협력 강화를 위한 조약에 서명한 뒤 악수를 하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 제공 사진

이탈리아가 유럽연합(EU)을 이끌어온 독일·프랑스 2각 체제를 대체하는 3각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퇴임 이후 유럽연합 내 판도 변화를 계기로 위상 강화에 나선 것이다.

이탈리아는 이를 위한 첫걸음으로 지난해 11월 프랑스와 협력 강화를 위한 퀴리날레 조약을 맺었다. 이를 통해 마리오 드라기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이른바 ‘드라크롱(드라기+마크롱) 동반자 관계’를 완성했다. 지난달 말에는 올라프 숄츠 신임 독일 총리와도 협력 강화를 위한 조약 체결을 검토하기로 함으로써 3각 체제 구축에 한발 더 다가섰다.

올해는 유럽연합의 각종 정책에 대한 재검토 작업이 예정돼 있어, 이탈리아의 이런 움직임은 유럽연합 전반에 적지 않은 변화를 부를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 측면에서는 재정 지출 확대 움직임이 강화되고, 외교·안보 측면에서는 ‘강한 유럽’ 주장이 더욱 힘을 얻을 전망이다. 하지만, 중재와 타협을 바탕으로 한 세심한 지도력이 뒷받침되지 못할 경우, 이탈리아의 부상은 갈등과 분열의 씨앗이 될 위험도 있다.

프랑스-이탈리아 우호조약 체결

드라기 총리와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해 11월26일 외교·안보부터 경제, 문화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는 퀴리날레 조약을 체결했다. 드라기 총리는 이를 두고 “두 나라 관계에서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평했고, 마크롱 대통령은 “새 조약 체결의 목표는 더 강하고 더 자주적인 유럽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탈리아 대통령 관저인 퀴리날레궁에서 서명돼 ‘퀴리날레 조약’이라는 애칭이 붙은 이 조약을 통해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최근 몇년간 이어진 갈등을 해소했다. 1963년 프랑스와 독일이 맺은 우호조약을 모델로 한 이번 조약 체결 논의는 2017년 시작됐으나, 이듬해 이탈리아에서 비주류 포퓰리즘 정당인 ‘오성운동’과 극우 성향의 ‘동맹’으로 구성된 연립정부가 들어서면서 없던 일이 됐다. 이렇게 만들어져 ‘극우 포퓰리즘’적 성향을 보인 연립정부는 이주민 문제 등을 둘러싸고 마크롱 정부와 잇따라 충돌했다.

프랑스와 갈등을 끝내고 관계를 개선시킨 주역은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출신의 드라기 총리다. 지난해 초 오성운동과 민주당 중심의 연정이 깨지자 해결사로 나선 그는 ‘동맹’을 포함한 주요 정당을 아우르는 연정을 구성해 정국을 안정시켰다. 그 이후 마크롱 대통령과 주기적으로 만나며 ‘드라크롱 동반자 관계’를 굳혔다.

두 나라 관계 개선에는 마크롱 대통령과 드라기 총리가 비슷한 경력의 소유자라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고 미국의 정치 매체 <폴리티코>가 지적했다. 두 사람은 모두 투자은행 출신이며, 유럽연합이 좀더 과감하고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고 보는 유럽연합 강화론자다. 파리정치대학의 정치사학자인 마르크 라자르 교수는 마크롱 대통령에게 드라기 총리는 ‘또 다른 자아’이자 그 이상이라고 평했다.

드라기 총리는 독일과의 협력 강화에도 나섰다. 그는 지난달 20일 로마에서 올라프 숄츠 독일 신임 총리와 첫 정상회담을 열고, 퀴리날레 조약과 비슷한 조약 체결을 검토하기로 합의했다. 정상회담 뒤 숄츠 총리는 “우리는 더 강하고 더 나은 유럽연합이 필요하다”고 말했고, 드라기 총리는 “유럽연합 통합을 강화하고 이 과정을 더 빠르게 이뤄내기 위한 협력이 필요하다”고 호응했다. 두 나라 정부 관계자들은 독일-프랑스-이탈리아 3각 협력 체제 구축에 필요한 마지막 연결고리를 완성하는 것이 두 나라 협력의 목표라고 전했다.

숄츠 총리가 취임 12일 만에 이탈리아를 방문한 것도 이탈리아로서는 고무적이다. 전임 메르켈 총리는 취임 뒤 영국, 미국 등 여러 나라를 방문한 뒤에야 이탈리아를 찾은 반면, 숄츠 총리는 프랑스, 폴란드, 유럽연합 본부가 있는 벨기에에 이어 네번째로 로마를 방문했다.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왼쪽)와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정상회담 뒤 악수하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 제공 사진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왼쪽)와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정상회담 뒤 악수하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 제공 사진

“유럽연합 재정 지출 확대” 주장, 힘 얻을 듯

‘독-프-이’ 3각 체제가 확고해질 경우, 유럽연합 내에서 재정 지출을 확대하자는 목소리가 더욱 힘을 얻을 전망이다. 이를 예고하듯 마크롱 대통령과 드라기 총리는 지난달 23일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스>에 공동 기고한 글에서 코로나19 대유행 대응 과정에서 크게 늘어난 공공 부채 해결을 위한 ‘유럽연합 부채관리청’ 신설을 제안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경제자문 등 4명의 경제학자들이 최근 발표한 논문을 거론하며 회원국들에 올해 재정정책 재검토 과정에서 이 문제를 심도 깊게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부채관리청 신설 방안은 2020년 7월 유럽연합이 합의한 7500억유로(약 1012조원) 규모의 ‘유럽회복기금’의 자금 조달 방식을 상시화하자는 이야기다. 이 방식은 개별 회원국 대신 유럽연합이 금융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 회원국에 분배함으로써 부채를 분담하자는 것이다.

이런 방안을 택하면 이탈리아·스페인 등 재정 적자가 큰 회원국들이 유리해진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이탈리아의 정부 부채는 2020년 말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155.8%까지 늘었다. 이는 1분기 대비 무려 18%포인트 증가한 것이다. 프랑스의 부채도 14.3%포인트 늘어난 115.1%, 스페인의 부채는 20.8%포인트 급증해 119.9%를 기록했다. 이들 나라는 독일(69.7%), 네덜란드(54.3%), 덴마크(42.1%) 등 북유럽 국가들보다 부채 부담이 훨씬 크다.

하지만, 독일은 다른 회원국의 부채를 대신 떠안는 걸 우려하며 공동 채권 발행에 강하게 반대해왔다. 사민당·녹색당·자민당으로 구성된 새 연립정부도 ‘유럽회복기금’ 방식의 추가 자금 조달을 수용하지 않기로 합의한 바 있다.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등 건전 재정을 강조하는 회원국들도 이런 방안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부채관리청 논의는 ‘드라크롱’의 협상 능력을 가늠할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프랑스가 2022년 상반기 유럽연합 의장국을 맡은 걸 기념해 파리 대통령궁에 유럽연합 깃발이 표시되어 있다. 파리/AFP 연합뉴스
프랑스가 2022년 상반기 유럽연합 의장국을 맡은 걸 기념해 파리 대통령궁에 유럽연합 깃발이 표시되어 있다. 파리/AFP 연합뉴스

프랑스의 ‘강한 유럽’ 행보도 빨라질 듯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협력 강화는 유럽연합의 독자 방위력 확보를 위한 마크롱 대통령의 행보에도 힘을 실어줄 전망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가 올해 상반기 유럽연합 의장국을 맡은 걸 계기로 강한 유럽을 더욱 강하게 역설하고 나섰다. 그는 7일 파리에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과 만난 뒤 몇달 안에 유럽연합의 외교정책과 방위전략의 청사진을 확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 청사진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안에서 유럽이 일치된 목소리를 견지하고 협력을 강화하게 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도 “유럽의 방위를 강화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유출된 바 있는 청사진 초안은 회원국 전체의 찬성이 없어도 합동 군사작전에 들어갈 수 있는 방안을 포함하고 있다. 초안에는 최대 5천명의 육해공 병력을 빠르게 투입하는 ‘유럽 신속배치 능력’ 구상도 담겼다.

마크롱 대통령의 유럽연합 강화 주장은 지난해 9월 미국·영국·오스트레일리아가 3국 군사 협의체인 ‘오커스’를 출범시키고, 최근 유럽과 러시아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한층 강해졌다. 영어를 사용하는 앵글로색슨 국가들이 오커스로 단합하자, 유럽도 자체적인 군사 협력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더 커진 것이다. 프랑스는 브렉시트 이후 유럽연합 중 유일하게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라는 지위를 활용해 이런 움직임을 적극 견인하는 중이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피에르 모르코스 객원연구원은 “여러 유럽연합 회원국은 그동안 미국과의 관계 등을 의식해 ‘더 자주적인 유럽’에 의문을 제기해왔다”며 “하지만 현재 유럽연합 의장국으로서 프랑스의 입지는 지난해 독일이 의장국을 맡으며 안보 문제를 제기했을 때보다 훨씬 유리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도 ‘더 강한 유럽 방위력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 적어도 수사학적으로는 유럽 동맹국들과의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자국 내 정치 상황이다. 마크롱 대통령과 드라기 총리가 그리는 새로운 유럽연합 구상이 현실화되려면 ‘회원국 설득’ 외에 만만치 않은 ‘자국 내 정치’를 돌파해야 한다. 마크롱 대통령은 오는 4월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하는 게 무엇보다 시급하다. 지난해 중반까지도 문제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으나, 최근 공화당의 사상 첫 여성 후보인 발레리 페크레스 후보의 추격이 만만치 않다. 결선 투표에서 두 사람이 붙을 경우 마크롱 대통령이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

이탈리아 정치 상황은 좀더 불투명하다. 오는 24일부터 상·하원 의원과 20개 주 대표들은 차기 대통령 선출 절차에 들어갈 예정인데, 드라기 총리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 정국 안정 측면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는 드라기 총리가 대통령이 돼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연립정부가 깨지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정국이 안정되지 않는 한, ‘드라크롱 동반자 관계’가 힘을 발휘하기는 어렵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국제 많이 보는 기사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1.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2.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3.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4.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5.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