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9일 솔로몬 제도의 머내시 소가바레(왼쪽) 총리가 중국을 방문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리커창 중국 국무원 총리의 안내를 받고 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중국이 남태평양의 섬나라 솔로몬 제도와 안보 협정을 추진하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웃 국가인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가 긴장하고 있다. 협정이 체결되면 중국이 앞마당인 동중국해를 넘어 미국과 곧바로 마주할 수 있는 남태평양에 진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이 모인다.
지난 24일 트위터에 에이(A)4 용지에 인쇄된 중국과 솔로몬 제도의 안보협정 초안 사진이 올라왔다. 이 문서엔 중국이 자국민의 안전과 사업을 보호하기 위해 솔로몬 제도에 무장한 군대를 파견하고 해군기지를 설치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되는 내용 등이 담겼다.
중국이 남태평양에서 해양 작전에 나설 수 있는 근거와 명분을 갖게 되는 문서가 공개되자 지역 맹주인 오스트레일리아가 긴장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에이비시>(ABC) 뉴스는 이날 오후 해당 문서가 진본이며, 아직 공식 체결되지는 않은 것으로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다음날인 25일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마리스 페인 외무부 장관 명의의 성명을 통해 공식적인 우려 입장을 밝혔다. 페인 장관은 “중국과 솔로몬 제도간에 제안된 안보 협력 협정 초안을 알고 있다. 우리는 정기적으로, 정중하게 솔로몬 제도 정부에 우려 사항을 제기했다. 우리 지역의 안정과 안보를 훼손하는 모든 행동에 대해 특히 우려한다”고 밝혔다.
뉴질랜드의 저신다 아던 총리도 28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중국과 솔로몬 제도 사이의 안보 협정이 “태평양 지역을 군사화할 수 있다”며 “중국이 솔로몬제도에 군 병력을 배치할 이유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협정 당사자인 중국의 태도는 분명해 보이지만, 솔로몬 제도의 태도는 다소 유동적이다. 중국 외교부 왕원빈 대변인은 28일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과 솔로몬 제도의 협력은 국제법에 부합하며 사회 안정에 유리하고 지역과 국가의 이익 증진에 도움이 된다”며 “중국과 태평양 섬나라의 호혜 협력을 방해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실현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머내시 소가바레 솔로몬 제도 총리는 29일 “ 우리는 새로운 친구로부터 어떤 압력도 받지 않았다”면서도 “솔로몬 제도에 군사 기지를 건설하도록 중국에 요청할 의도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앞서 중국 선톈 그룹은 2019년 중국이 솔로몬 제도와 수교한 뒤 이 나라 안에 있는 툴라기 섬을 75년 동안 임대하기로 지역 정부와 계약을 맺었었다. 하지만, 솔로몬 제도 중앙정부가 반대하며 무산된 적도 있다.
안보 협정 초안 문서는 솔로몬 제도의 한 정치인에 의해 유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 솔로몬 제도가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할 때 이를 강하게 비판했던 솔로몬 제도 말라이타주 주지사의 한 고문이 문서 유출의 주인공이라고 <에이비시> 뉴스가 전했다. 소가바레 총리는 협정 초안을 유출한 이에 대해 “미치광이”라고 비난했다.
솔로몬 제도(빨간 화살표)와 주변 국가들. 구글 지도 갈무리
중국군이 솔로몬 제도에 진출하면, 태평양에서 벌어지는 미-중 간 대결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지난해 9월 오스트레일리아, 영국과 안보 결사체인 ‘오커스’(AUKUS)를 출범시켰다. 이 결사체의 핵심 내용은 오스트레일리아가 핵추진 잠수함을 보유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오스트레일리아의 코앞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면 지역 내 갈등은 증폭될 수밖에 없다. 솔로몬 제도에는 2차 세계대전 때 오스트레일리아를 견제하려면 일본군과 이를 저지하려던 미군 사이에 격전이 벌어졌던 과달카날섬이 포함돼 있다. 이 전투에서 일본군이 막대한 피해를 입고 패퇴하며, 미국은 전체 태평양 전쟁에서 승기를 잡게 된다.
중국은 2019년 대만 수교국이었던 솔로몬 제도와 외교 관계를 맺는 등 이 지역에서의 세력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36년 동안 이어온 대만과의 외교 관계를 끊고 중국과 외교 관계를 새로 수립한 솔로몬 제도는 이후 친중 세력과 친대만 세력이 부닥치는 등 사회적 갈등을 빚고 있다. 지난해 11월 발생한 최대섬 말라이타에서의 폭동도 내부 지역 갈등과 함께 친중-친대만 세력 간의 갈등이 바탕이 됐다. 당시 시위대가 경찰서를 불태우고 일부 상점을 약탈하는 등 폭동 양상으로 번지자, 오스트레일리아와 파푸아뉴기니가 군대를 파견하기도 했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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