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그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라파엘 그로시 세계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그/EPA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수세에 몰린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이어지는 가운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세계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에게 “핵활동에 관한 과도한 정치적 레토릭을 삼가자”고 말했다.
11일 러시아 <타스>(TASS) 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라파엘 그로시 사무총장과 만나 “서로 관심 있는 모든 이슈에 대해 논의할 준비할 준비가 돼있다. 자포리자 원전 상황에 대해서도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러시아의 핵활동과 관련해 세계가 우려하는 것과 관련해 “이와 관련해 지나친 정치적 수사(rhetoric)를 삼가자”며 “오늘날 핵 활동에 관한 모든 것엔 과하고 위험하게 정치화된 요소가 있다. 세계 무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방해와 복잡한 과정에도 우리의 활동과 협력의 이 지역을 정상 상태로 되돌릴 수 있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핵무기 사용을 자제하겠다는 의미인지, 자포리자 원전을 둘러싼 특수한 사정을 해결하겠다는 뜻인지는 분명치 않다.
이날 면담은 그로시 사무총장이 지난주 키이우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면담한 데 이어 이뤄졌다. 그로시 사무총장은 현재 전쟁 중인 두 정상과 △자포리자 원전 주변의 안전 지역 설정 문제 △러시아의 자포리자주 합병 선언 이후 원전 소유권 문제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푸틴 대통령은 자포리자주 등 우크라이나 동남부 4개 주를 러시아연방에 편입한 뒤, 5일엔 자포리자 원전 운영권을 접수하고 원전을 국유화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세계원자력기구는 이 면담 이후 내놓은 성명에서 그로시 사무총장이 이번주 후반께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다시 만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로시 사무총장은 자포리자 원전 상황은 최근 더 위험하고 불안정해지고 있다며 “우린 더 이상 시간 낭비할 여유가 없다. 핵 사고를 피하기 위해 모든 조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로이터> 통신은 이날 러시아가 자포리자 원자력 발전소 부소장을 납치했다고 밝혔다. 자포리자 원전 운영사인 우크라이나 국영 에네르고아톰은 텔레그램을 통해 “발레리 마르티뉴크(Valeriy Martynyuk) 자포리자 원전 부소장이 하루 전 러시아군에 납치돼 현재 모처에 구금돼있다”고 밝혔다. 에네르고아톰은 그로시 사무총장에게 “부소장의 안전을 위해 가능한 한 모든 조처를 취해달라”고 호소했다. 러시아는 지난달 30일에도 이호르 무라쇼우 자포리자 원전 소장을 우크라이나군과 내통한 혐의로 구금한 뒤 며칠 후 석방한 바 있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에 대해 아직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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