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에 발간되던 어린이잡지에는 ‘서기 2000년이 되면?’과 같은 코너를 종종 실었다. 만화적 상상력과 과학적 기술 발전에 대한 기대가 어우러진, 인기 만점의 그 코너에는 사람마다 로켓 배낭을 달고 하늘을 날아가는 모습이나 우주여행과 함께 자동차 대신 무빙워크나 모노레일위의 좌석에 앉은 채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미래생활 상상도’가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21세기가 된 지금 ‘상상’의 일부는 기술적으로 얼마든지 실현이 가능해졌다. 기술은 충분히 발전했지만, 사람은 아직까지 오래전의 생활습관과 크게 달라지지 않아 ‘신기술’이 ‘박대’받고 있는 현실이 보도돼 화제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시속 11km의 ‘자동 보도’(무빙워크)에 사람들은 안전하게 올라탈 수 있을까?
<월스트리저널>은 16일 프랑스에서 개발돼 지난 2002년 파리 몽파르나스역에 설치된 시속 11km의, 세계에서 가장 빠른 무빙워크의 최근 상황을 전했다.
파리의 지하철과 초고속열차 TGV를 잇는 몽파르나스역에 설치된 승객 이동수단인 무빙워크는 최고시속 11km를 낼 수 있지만 지나치게 빠른 속도에 적응하지 못한 승객들의 실족사고가 빈발하면서 현재 그의 3분의 1 수준인 시속 4.3km로 운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프랑스, 속도에 대한 유별난 집착 ‘콩코드’ ‘떼제베’ 개발
프랑스인들의 속도에 대한 집착은 유별하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승객운송목적의 상업용 제트기인 콩코드기를 개발해 운항했는가 하면, 세계 최고속의 열차 TGV를 개발했다. 프랑스는 가장 빠른 범선도 개발중이다. 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자동보도의 개발에 나섰다.
안셀므 코트(58)는 1995년부터 7년에 걸친 연구와 약 127억원의 연구비를 들인 끝에 세계에서 가장 빠른 시속 12km의 무빙워크를 개발해내는 데 성공했다. 다양한 시행착오를 거친 이 초고속 무빙워크는 2002년 파리철도공사 ‘RATP’가 파리 지하철 몽파르나스역에 설치함으로서 세계적 관심을 불러모았다.
“현대 도시생활에서 이동하는 데 진짜 문제는 수많은 군중을 어떻게 움직이느냐의 문제다. 먼 거리는 TGV나 비행기를 타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 그러나 1km 미만의 짧은 거리는 그럴 수 없다”는 게 초고속 무빙워크를 개발한 안셀므 코트의 생각이다.
그는 “프랑스 중동부 르와르 계곡에서 파리까지 240km를 TGV로 이동하는 데 1시간이면 충분하지만 TGV를 타기 위해 몽파르나스 역을 통과하는 데는 25분이 걸리는 아이러니”라며 “TGV의 속도를 더 높이려고 하는 시도는 ‘무의미’한 짓”이라고 말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초고속 무빙워크 개발에 나섰다고 말한다.
‘250km 이동하는 데 1시간, 역 구내 빠져나가는 데 25분’은 아이러니
몽파르나스 초고속 무빙워크의 3단계 구조. 가속 구간과 본구간, 감속 구간으로 이뤄져 있다.
2002년 7월 국민적 관심 속에 몽파르나스 역의 총거리 180m짜리 초고속 무빙워크는 시속 11km의 빠른 속도를 선보였다. 이 속도는 일반적인 보행속도의 3배, 파리 시내버스의 평균 주행속도였다. 파리 당국은 출퇴근시 하루 두 번 이 무빙워크를 이용할 경우 1년에 11시간 30분의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을 홍보했다.
“몽파르나스역에서는 더이상 걸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염력으로 이동(텔레포트)합니다”라며 한껏 자랑스러워 하는 장-폴 유숑 파리 시장(Paris region governer)의 개막사와 더불어 무빙워크는 운행을 개시했다.
그러나 기대를 모은 초고속 무빙워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속도가 너무 빨랐기 때문이다. 시속 이 무빙워크는 가동 30시간 만에 이용자 5만여명 가운데 40%가 넘어지는 실족 사고를 겪었고, 몇몇은 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다. 이날 운이 없는 이용자들이 넘어지고 자빠지는 광경이 저녁뉴스에 방송돼, 웃음거리가 됐다.
탑승, 하차 위해선 상당한 주의 필요,,, 잇단 부상과 사고, 골절도 여러건
시속 10km 이상의 초고속 무빙워크를 일반적인 운동감각의 승객들이 이용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장치와 기술이 필요했다. 수많은 조각들로 구성된 거대한 콘베이어벨트를 시속 10km 이상 회전시키는 기술은 간단한 일이다. 헬스클럽에서 시속 10km 이상으로 움직이는 트레드밀(러닝머신)에 준비없이 올라타거나 내려서다가는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 초고속 무빙워크의 핵심 기술은 시속 11km의 무빙워크에 안전하게 승객을 올라타게 만들고, 안전하게 평지로 내려서게 하는 감속·가속 장치다.
먼저 이 초고속 무빙워크 입구에는 안전요원이 있어, 초고속 무빙워크를 이용해도 문제가 없을 사람인지를 ‘선별’하는 작업을 한다. 핸드레일을 잡을 수 있도록 반드시 한 손이 자유로워야 한다. 두 손에 쇼핑백이나 가방을 갖고 있는 사람은 이용이 불가능하다. 탑승을 위해서는 각각 10m에 이르는 ‘가속’ 구간과 ‘감속’ 구간을 거쳐야 한다. 가속 구간은 일련의 금속 롤러로 이뤄진 발판으로 돼 있어, 앞 부분은 시속 2.2km로 시작해 순차적으로 시속 11km에 이르도록 가속해준다. 탑승자는 한 손으로 핸드레일을 잡고 롤러 위로 미끄러지다 본궤도 위로 올라선다. 내려설 때는 반대의 과정으로 감속하게 된다.
초고속 무빙워크 기술 핵심은 ‘안전하게 올라타고 내리기’
그러나 개발자가 ‘빠르게 회전하는 양탄자’라고 이름붙인 초고속 무빙워크는 탑승자들의 잇단 부상 사고로 인해 결국 3개월 만에 가동이 중단됐다. 3개월 뒤 무빙워크의 속도를 시속 7.2km로 낮춰 다시 가동에 들어갔으나 이 역시 실족사고가 끊이지 않자 지난 2005년 무빙워크의 속도는 현재의 시속 4.3km로 낮춰졌다.
초고속 무빙워크에 대한 세계 각국의 시선은 기대반 우려반이다.
영국 웨스터민스터대학의 대중교통시스템 교수인 피터 화이트는 “대도시에는 연계 대중교통수단의 수요가 높다”며 “초고속 무빙워크가 비싸지 않다면 미래가 밝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70년대말 뉴욕 지하철에 고속 자동보도 도입을 연구한, 뉴욕의 합리적 도시교통연구소의 조지 하이칼리스 소장은 “훌륭한 아이디어이지만, 탑승자들의 소송 여부를 떠나 안전성이 문제다”고 말한다.
하지만 프랑스의 도전은 굴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RATP의 파스칼 알코 대변인은 “우리는 사람들이 익숙해질 수 있도록 무빙워크의 속도를 점진적으로 늘려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한편 독일의 티센크룹AG 중공업은 캐나다 토론토의 피어슨 공항에 길이 300m짜리 시속 7km 고속 무빙워크를 가설중이다.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구본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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