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와 일본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한·중, 그리고 일본간의 갈등은 미국에서도 중요한 국제 이슈 중 하나로 떠올랐다. 국무부 정례브리핑에선 매일 이에 관한 질문이 잇따르고 언론에도 글들이 제법 실린다. 13일엔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최근 동아시아의 긴장’이란 주제의 세미나도 열렸다.
세 사람의 동아시아 전문가가 기조발제를 한 이 세미나에서 한국 상황을 설명한 이는 보수 성향의 한반도 전문가인 고든 플레이크 맨스필드태평양연구소장이었다. 그의 분석은 흥미로울 정도로 솔직했다.
그는 “한국에선 강력한 민족주의와 반일, 때로는 반미적 대중정서가 정치인들에게 매우 위협적인 요소가 된다. 그러나 이런 경향은 장단기적으로 한국의 국가이익을 해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한국 여론은 변덕이 심하다. 독도 문제는 한국의 보궐선거와 연결돼 있다. 최근 반일 정서를 타고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율은 상승했다. 이건 극적으로 일본과의 관계를 해치고 있는데, 북핵 문제를 생각하면 일본과의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가 말하고자 한 건 “한국의 적은 북한인데, 왜 손을 잡아야 할 일본과 싸우느냐”는 것이었다. 이는 고든 플레이크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다. 역시 보수적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의 발비나 황 선임연구원도 최근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일본의 협력이 필요한데, 왜 독도 문제를 이슈로 만들고 있느냐”고 반문했다.
두 사람의 말은 미국 보수세력이 한-일 분쟁을 보는 시각을 잘 드러내준다. 미국의 관심사인 ‘북핵’만이 평가의 중심에 서고, 한국을 비롯한 일본 주변국의 국민정서와 역사적 경험은 무시되고 있다. 최근 동아시아의 갈등을 한·중·일 세 나라의 국내정치적 상황과 연결해 해석할 수는 있다. 그러나 갈등의 뿌리인 동아시아 역사와 특히 전범국가로서 일본의 과거 행적에 대한 비판은 들어설 자리가 없다.
미국에 이런 입장만 있는 건 아니다.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 톰 플레이트 교수는 ‘아시아는 전진하고 있는가’란 글에서 “일본은 공세적인 영토 요구를 함으로써 사람들이 과거를 잊는 걸 도와주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지금도 2차대전 전범의 입국을 거부하고 있다. 그런 미국이 다른 나라의 과거사 지적에 자신의 안보논리만 들이대는 건 또하나의 일방주의가 아닐까 싶다. 워싱턴/박찬수 특파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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