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가 지난 5월 연료 가격을 약 30% 올리자, 외신과 경제 전문가들은 일제히 ‘98년’ 얘기를 다시 꺼냈다. 최근 인플레 등으로 촉발된 경제 위기가 또다시 정치 위기로 번질지 모른다는 우려에서다. 인도네시아는 10년 전 외환위기에 이어 휘발유 가격 폭등에 맞선 항의 시위로 정치적 격변기를 맞았다. 결국 32년 동안 권좌에 있던 철권통치의 수하르토가 쫓겨났다.
인도네시아뿐 아니라 아시아 일부 신흥 개발도상국들은 경제 위기가 다른 나라와 지역보다 증폭된 정치 위기로 이어지는 독특한 ‘역사성’을 보여주고 있다.
타이에서는 97년 외환 위기의 여파로 총리·부총리가 동반 사퇴했다. 당시 부총리였던 탁신 친나왓은 4년 뒤 총리로 등극했으나, 2006년 권좌에서 물러났다. 부정부패가 직접적 원인이었지만, 낮은 경제성장률 또한 주요한 배경으로 작용했다.
외환 위기 당시 필리핀은 정권 교체 등 정치적 급변은 피했으나, 3년 뒤 조지프 에스트라다 대통령은 도박업자한테서 거액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물러났다. 경제성장률 저하와 페소화 폭락, 재정 적자 등 경제 실패가 대중들의 불만을 키운 상태에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한국에서는 외환 위기로 말미암은 정치적 파장이 50년 만의 수평적 정권 교체를 가능하게 했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지난해 9월 미얀마(버마)에서는 석유 가격 인상에 대한 항의에서 시작된 시위가 군부 정권에 맞선 민주화 요구 시위로 번졌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