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지야 얽힌 역사
러시아와 그루지야는 서로 얽힌 복잡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러시아혁명 시절 대러시아민족주의를 근본으로 하는 일국사회주의를 주장했으며 최종적으로 소련의 권력을 장악한 이오시프 스탈린과 옛소련의 마지막 외무장관이던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가 모두 그루지야 출신이다. 옛소련의 수립과 운영에 그루지야 출신들은 많은 구실을 했으나, 그루지야는 소련 체제 이탈의 선두주자이기도 했다.
러시아와 그루지야 사이에 자리한 이런 애증관계에, 그루지야 내 복잡한 민족문제의 이해관계가 놓여 있다. 이번 러시아-그루지야 전쟁의 도화선이 된 남오세티야는 러시아의 북오세티야자치공화국과 더불어 이란계 오세티야인(인구 66%) 지역으로 오세티야어를 쓴다. 1918년 그루지야가 러시아제국에서 독립을 선언하자, 남오세티야도 그루지야에 맞서 독립투쟁을 펼쳤다. 그러나 수천명의 사망자를 남긴 채 좌절됐다.
소련이 해체된 1991년 그루지야는 독립했다. 이듬해 옛소련의 외무장관이던 셰바르드나제가 국가평의회 의장과 대통령 등을 맡으며 그루지야를 10여년간 이끌었다. 그러나 앞서 1990년 12월 남오세티야가 자치공화국을 선포했을 때, 그루지야는 군대를 보내 저지시켰다. 내전으로 수천명이 숨지고 수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1992년 6월 보리스 옐친 당시 러시아 대통령의 중재로 그루지야와 남오세티야 간에 ‘소치협정’이 체결됐다. 이 정전협정으로 비무장지대 내 양쪽 군대와 러시아 군대로 구성된 연합평화유지군이 활동해왔으며, 유럽안보협력기구(OSCE)가 정전을 감독했다.
1810년 러시아제국에 흡수된 그루지야 내 압하지야공화국도 러시아-그루지야 전쟁의 또다른 전선이 됐다. 러시아제국이 망한 뒤 한때 그루지야에 점령됐던 압하지야는 소련 성립 이후 1921년부터 1930년까지 자치공화국으로 존립했다. 그러나 그루지야 출신인 스탈린의 등장으로, 압하지야의 수많은 지식인들이 처형당하고 탄압받았으며, 압하지야는 다시 그루지야 영토 내 자치공화국으로 재편됐다. 압하지야는 1992년 분리독립 선언을 했으나, 그루지야와 교전으로 수백명이 숨졌다. 러시아는 1994년 그루지야와의 협정 아래 이곳에도 평화유지군을 파견했다.
류이근 기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