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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북-미 적대관계와 베트남전의 교훈

등록 2005-05-02 18:03수정 2005-05-02 18:03

베트남전이 미국인들에게 던지는 감정은 복잡하다. 4월30일이 종전 30주년이었지만 그걸 축하할 수만은 없다. 미국으로선 패전 기념일인 탓이다. 미국 언론들이 이 날을 담담하게 지나친 데엔 이런 이유도 작용한 듯 싶다. 단순히 비교할 수야 없겠지만, 지난해 6월 2차 세계대전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60주년 때 모든 신문·방송들이 대대적으로 특집기사를 내보낸 것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참전군인이 아니면서도 베트남전에 누구보다 미묘한 정서를 느끼는 이가 영화배우 제인 폰다일 것이다. 그는 전쟁이 한창이던 1972년 북베트남의 수도 하노이를 방문했다. 그곳에서 반전 방송을 하고, 미군기를 겨냥한 대공포 위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런 그에겐 지금도 ‘하노이 제인’이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전쟁중에 적군에 협력했다는 비아냥이다. 지난해 대선 때는 존 케리 민주당 후보와 제인 폰다가 반전집회에 함께 참석한 사진이 조작돼 인터넷에 떠돌기도 했다. 제인 폰다가 케리 지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하지 못한 이유도 오히려 그것이 케리에게 감표 요인이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최근 펴낸 자서전에서 폰다는 하노이 방문의 느낌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마지막 순간까지 갈까 말까 망설였다고 했다. 대공포 위에서 사진 찍은 건 실수였다고 토로했다. 이 내용이 언론에선 ‘제인 폰다의 30년만의 후회’로 색칠됐다.

그러나 폰다의 자서전을 읽어보면, 그의 하노이 방문에서 묻어나는 건 후회보다는 진실에 대한 갈망이다. 그는 하노이를 돌아보면서 “우리 정부(미국)가 행한 일에 슬픔과 죄책감을 느꼈다”고 적었다. 미군 집속탄의 참혹한 피해를 보면서, 그는 베트남인들의 눈에서 ‘미국에 대한 적개심’을 찾으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고 말했다.

비슷한 감정을 종전 30년 뒤 다시 베트남을 찾은 한 참전미군의 얘기에서도 느낄 수 있다. 최근 <네이션>에 실린 참전 상이용사 마이크 설소나의 베트남 방문을 다룬 글을 보면, 설소나가 “베트남인들은 나를 친구로 대해줬다. 이건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10년간 150만명의 베트남인과 5만8천여명의 미군이 숨진 전쟁에서, 상대에 대한 적개심은 베트남보다 오히려 미국쪽에서 더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설소나는 30년이 지난 뒤에야 그걸 깨달았지만, 제인 폰다는 전쟁의 와중에서 이미 그걸 보았다. 용기가 없으면 어려운 일이다.

베트남전이 끝난 건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꼭 30년만의 일이다. 다시 30년이 지난 지금 미국은 이라크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다. 미국은 이슬람권의 증오와 테러를 두려워하지만, 오히려 더 무서운 건 미국이 그들에게 던지는 증오일 수도 있다.

요즘 다시 북핵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그 밑바닥엔 ‘적대행위 종식’을 요구하는 북한과 미국의 줄다리기가 있다. 30년이 흐른 뒤에 오늘을 돌아볼 때, 북한과 미국간의 ‘적대감’이란 게 어쩌면 지금 어느 참전군인이 베트남을 향해 느끼는 감정과 비슷할는지 모른다. 이걸 지금 깨우치려면 제인 폰다처럼 상대방의 심장부를 찾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워싱턴/박찬수 특파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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