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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G20은 ‘유방’의 ‘항우’ 달래기?

등록 2008-11-16 19:03수정 2008-11-16 19:41

베이징/유강문 특파원
베이징/유강문 특파원
특파원리포트
“누구의 홍문연(鴻門宴)인가?”

미국 워싱턴에서 주요·신흥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리기 사흘 전 중국의 <동방조보>에 실린 관련 기사의 제목이다. 이번 회의를 진(秦) 말기 유방과 항우가 패권을 다툴 때, 홍문에서 열린 ‘음모로 가득찬’ 잔치에 빗댄 것이 흥미롭다. 이날 잔치에서 천하의 운명이 갈렸기 때문이다.

진시황이 죽자 대륙은 혼란에 휩싸인다. 곳곳에서 농민 봉기가 일어나고, 야심만만한 제후들이 왕좌를 향해 칼을 겨누기 시작했다. 이들 가운데 회계에서 군사를 일으킨 항우의 세력이 제일 강력했다. 패현을 장악한 유방은 그의 밑에 들어가 수하가 되기를 자청한다.

유방이 진의 수도 함양을 정복하면서 사단이 났다. 항우는 자기보다 군세가 약한 유방이 함양에 먼저 깃발을 꽂자 격노했다. 유방이 턱없는 야심을 드러냈다며 반드시 목숨을 거두겠다고 발을 구른다. 항우는 곧바로 군대를 몰아 함양에 가까운 홍문까지 쳐들어갔다.

다급해진 유방은 홍문으로 달려가 항우에게 머리를 조아린다. 100여명의 수행원을 거느리고 항우의 막사를 찾아간 그는 추호도 황제가 되려는 야심이 없으니 노여움을 풀라고 읍소한다. 분이 가신 항우는 그날 밤 자신의 막사에서 화려한 잔치를 베푼다. 이른바 ‘홍문연’이다.

워싱턴의 정상회의를 이에 빗대면 이렇게 될 성싶다. 달러의 패권이 흔들리면서 국제 금융 질서가 혼란에 빠졌다. 미국은 물론, 유럽과 신흥개도국들이 제각각 새로운 질서를 구상하며 세력을 결집한다. 몇몇 나라는 대놓고 달러의 패권에 도전한다. 가장 힘이 센 미국이 이에 불편한 심사를 드러낸다. 미국의 노기에 도전자들의 기세가 꺾인다. 미국은 이들을 자신의 군영으로 불러들여 위로연을 베푼다.

그러나 항우의 책사 범증은 유방을 제거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는다. 잔치 도중 항우의 사촌동생 항장을 찾아가 칼춤을 추는 척하며 유방을 죽이라고 꼬드긴다. 항장이 칼춤을 추며 유방 앞으로 나아가자 항우의 숙부임에도 유방을 돕던 항백이 칼춤을 추며 막아선다. 유방의 부하 번쾌는 막사로 뛰어들어가 항우에게 소리를 지르며 무도함을 따진다.

유방은 이 틈에 화장실을 가는 척하며 막사를 빠져나간다. 그리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패현으로 말을 몬다. 홀로 남은 유방의 책사 장량은 항우와 범증에게 옥을 바치며 용서를 구한다. 범증은 옥을 땅에 내동댕이치며 이렇게 내뱉는다. “아! 앞으로 천하는 유방의 것이구나!” 실제 그로부터 4년 뒤 항우는 유방의 군대에 포위돼 죽는다.


워싱턴에서도 칼춤이 난무했다. 달러가 갖고 있는 패권을 놓고 미국과 유럽이 맞섰다. 중국을 비롯한 이른바 신흥개도국들도 각자 노림수를 들고 잔치판을 지켰다. 그러나 달러를 대체할 새로운 기축통화는 떠오르지 않았다. 이번 회담이 새로운 국제 금융 질서를 구축하는 장소가 될 것이라던 기대도 일단 유보됐다.

지난해 중국에선 <화폐전쟁>이란 책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지금 세계는 기축통화의 패권을 놓고 ‘포연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 책은 중국이 이 전쟁에서 승자가 되기 위한 책략을 이렇게 제시한다. “담을 높이 쌓고 양식을 축적하며 서서히 등극하라.” 중국의 홍문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베이징/유강문 특파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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