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위기로 인한 인구 대이동
미국·유럽 등 실직에 반이민정서 탓 ‘울며 집으로’
‘남반구·후진국→북반구·선진국’ 40년흐름 거꾸로
‘남반구·후진국→북반구·선진국’ 40년흐름 거꾸로
‘집으로….’
가난의 덫에서 벗어나려 남반구(후진국)에서 북반구(선진국)로 향하던 지난 40년 동안의 거대한 인구이동의 흐름이 역류하고 있다. 세계 경제위기로 선진국에서 일자리를 찾을 기회가 줄어들고 이주노동자에 대한 반감마저 커지면서, 아예 보따리를 싸 고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일부에선 이런 움직임을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큰 폭의 세계무역 감소와 끊임없이 국경을 넘나들던 금융자본의 활동 둔화와 함께 ‘세계화 종언’의 상징으로 해석한다.
미국 주간 <뉴스위크>는 18일 인구학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올해 남반구에서 북반구로 향하는 이주자가 약 30%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며 “특히 이주노동자들의 귀국 행렬이 파도를 이루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유엔 인구국장을 지낸 조지프 하미에는 이민국가의 상징인 미국을 비롯해 스페인, 아랍에미리트, 체코에선 이민의 유입보다 유출이 많은 역류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뉴스위크>에 “우리는 곧 귀국길에 오르는 이주민들의 ‘쓰나미’를 보게 될 수 있다”며 “보수적으로 추정해도 수백만명이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지구촌 곳곳에서 전에 볼 수 없던 새로운 이동이 벌써 시작됐다. 말레이시아는 지난해 이후 약 20만명의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을 고국으로 내쫓았다. 중동의 유전지대와 서비스산업에 진출한 이주노동자 1300만명도 일자리를 잃고 고향 인도와 방글라데시 등지로 돌아가고 있다. 스페인에선 실직 이민자들에게 비행기표를 쥐여주면서 귀국을 종용하고 있다. 서유럽에서 동유럽과 아프리카로, 북미에서 중남미로 되돌아가는 인구 이동의 큰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뉴스위크>는 “이런 흐름이 계속된다면 세계 인구이동 역사상 가장 극적이었던 시기가 빠르게 종언을 고할 것”이라고 전했다.
세계 경제의 침체가 가속화할수록, 알을 낳으러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 떼 같은 ‘이주노동자 대역류’가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반이민 정서와 정책은 이런 흐름에 기름을 붓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16일 영국과 이탈리아, 스페인 국민의 70~80%가 ‘일자리 없는 이민자들은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가야 한다’고 응답했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전했다. 영국, 러시아 등 세계 곳곳에서는 반이민 시위가 벌어진다. <뉴스위크>는 “이주민들은 맨 나중에 고용되지만, 경기가 하락할 땐 맨 먼저 잘린다”고 지적했다. 수십년 동안 출산율 감소로 노동력, 특히 저임금 노동력이 필요했던 북반구 국가들은 이제 경기침체 탓에 이주노동자들이 덜 필요해졌거나, 심지어 자국민의 일자리를 빼앗는 위협으로까지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주민들에게 귀국은 최후의 선택이다. 경제위기로 선진국보다 빈국과 개발도상국들이 더 큰 타격을 입는 탓에, 고향에 돌아가 봤자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렵다. 이주노동자들의 실직과 귀국으로 송금이 크게 줄면서, 인력 수출에 크게 의존해온 나라들의 경제적 고통은 더욱 커지고 있다. 미주개발은행(IDB)은 중남미·카리브 지역 출신 이주민들의 지난 1월 본국 송금액이 전달에 비해 13%나 줄었다고 밝혔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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