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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교황 “자본주의, 거대한 일탈과 실패”

등록 2009-07-08 23:30

교황과 자본주의. 신정분리는 아니더라도 왠지 어색한 조합이다. 하지만 교황이 경제시스템을 언급하는 건, 이례적인 만큼 더욱 의미심장하다.

 교황 베네딕토16세가 7일 ‘비세속적 경제학자’로서 전 세계에 충고를 건넸다. 그는 지금의 경제시스템은 “죄악의 치명적 영향을 받은 게 명백하다”고 말했다. 여기까지 보면 위기를 초래한 지금의 자본주의 시스템이 뭔가 문제가 있다는 신앙적 설교에 불과한 거 아니냐는 선입관을 확인하는 것에 그칠 수 있다.

 하지만 교황은 좀 더 구체적인 문제를 지적해나간다. 그는 이번 경제위기의 주범인 금융집단에 “저축하는 이들의 이익을 배신할 수 있는 복잡한 금융상품을 남용하는 게 아니라, 활동의 진정한 윤리적 토대를 재발견해야만 한다”고 촉구했다. 또 기업가들에겐 “더 큰 사회적 책임”을 요구했다.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총체적으로 짚어내기도 한다. 그는 “거대한 일탈과 실패”라고, 위기를 초래한 자본주의를 매섭게 질타했다.

 이 때문에 <뉴욕 타임스>는 베네딕토16세를 “구 유럽사회주의 학파”로 표현했다. 확실히 그의 언어는 좌파적이거나 이상주의적이다. 그는 “수익이 배타적인 목적인 된다면, 또 궁극적 목적으로서 공공선을 추구하는 것이 없이 부적절한 수단을 쓴다면, 그것은 부를 파괴하고 빈곤을 만들어낼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부의 재분배도 강조했다. 가난한 나라들에 대한 개발 원조도 모두의 부를 창조하는 타당한 수단으로서 고려돼야 한다고 말한다.

 베네딕토16세의 이런 발언들은 지난 2005년 교황된 이후 나온 그의 세번째 회칙에 오롯이 담겨 있다. 모두 144쪽에 이른다. 이날 그의 발언이 더욱 주목받은 까닭은, 이탈리아 라퀼라에서 주요8개국(G8) 정상들이 경제회생의 해법 등을 논의하는 회담을 열기 하루 전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회칙은 ‘세계화, 시장경제, 외주, 노조, 대안 에너지’ 등의 단어로 넘쳐났다. 예를 들어 생산의 외주화가 노동자와 공급자, 소비자, 공동체 등 이해관계자들을 향한 회사의 책임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교황이 고삐 풀린 자본주의와 규제받지 않은 시장를 공격했다”며 “그는 더욱 강한 정부 규제를 요구했다”고 전했다.

 그는 전 세계에 호소했다. “현 위기의 악화와 불균형의 심화를 피하고, 위기에 의해 타격을 입은 경제를 회생시키려면 세계경제를 관리할 진짜 세계 정치기구가 필요하다.”

 교황의 말은 지난 30년동안 추구해왔던 자본주의의 작동방식에 대한 반성의 촉구다. 미국 오하이오주에 있는 데이튼대의 신학자 빈센트 밀러는 “교황은 시적 언어로 악덕 자본가들을 완전히 때려눕혔다. 그는 여러분들에게 ‘글로벌 자본과 주주 시스템이 관리인들에게 단기적 이익에 초점을 맞추도록 하면서, 공동체와 노동자, 환경의 대가를 치르게 했다’는 명확한 분석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황의 말이 ‘고장난 시스템의 재설계’에 얼마나 반영될까?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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