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남동부 첸나이 시 외곽에 자리잡은 한 ‘달리트’ 마을에서 지난 8월 어린 소녀가 쓰레기장 앞 큰길 앞에서 쪼그려 앉아 ‘볼일’을 보고 있다. 최하층 계급인 달리트의 아이들은 상하수도 시설도 없는 단칸방에 살고 있어 밖에서 볼일 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현장] 17일 세계빈곤퇴치의 날, 인도 첸나이에선…
‘불가촉 천민’ 청소부·빈농 아이들 1천여명
공부방·학비지원 힘입어 빈곤 탈출 부푼꿈
‘불가촉 천민’ 청소부·빈농 아이들 1천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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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시야를 가릴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파리 떼였다. 입이나 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으려면 손을 내저어야 했다. 자욱한 파리 떼들 사이로, 한 소녀가 큰길가 쓰레기장 한쪽에 쪼그리고 앉아 ‘볼일’을 보고 있었다. “공용 화장실을 쓰려면 2루피(50원)를 내야 하거든요.” 사회복지단체 ‘자노다얌’(‘일어서는 사람들’이란 뜻)의 활동가 프레샨나 쿠마르(24)의 설명이다.
인도 남동부 타밀나두(Tamil Nadu)주 첸나이(Chennai)시 외곽에 있는 사이다펫 지역은 6000여명의 ‘달리트’들이 모여 사는 빈민촌이다. ‘하리잔’이라고도 하는 달리트는 4계층으로 이뤄진 카스트에도 끼지 못할뿐더러 접촉마저 금기시되는 ‘불가촉천민’이다. 특히, 달리트 가운데서도 더욱 천대받는 ‘스캐빈저’(청소부)들이 사는 이 마을에는 남성 노인을 찾아보기 어렵다. 가스가 가득한 하수구에 직접 들어가 청소하는 일이 고되고 위험한 까닭에 남자들의 평균수명은 40대를 넘기지 못한다고 한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해 대를 이어 청소부로 일하는 이 마을에 지난 8월11일 희망의 씨앗이 뿌려졌다. 구호단체인 ‘한국희망재단’(www.hope365.org·상임이사 이철순)이 이 지역의 숙원이었던 공부방 건립 후원에 나선 것이다. 5평 크기의 ‘사이다펫 공부방’ 건물을 지어줬다. 희망재단은 인도와 방글라데시에 공부방을 세우고, 농촌 빈민여성에게 ‘소 사주기’ 사업 등을 하고 있다.
공부방 개소식에서 만난 달리트 아이들은 벌써부터 공부방에 큰 기대를 보였다. 바라니(14)는 “대학에 진학해 영화 음악감독이 되고 싶은데, 방과후에 공부를 도와준다고 하니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의사를 꿈꾸는 펜칠라마(16)는 “학교나 공기관에선 힌디어를 쓰지만, 마을 사람들은 지방 방언인 ‘타밀어’와 ‘텔루구어’를 쓰기 때문에 공부를 포기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공부방이 생겨 너무 좋다”고 했다.
첸나이시에서 2시간40여분을 달려 도착한 농촌 마을 다킬리의 라마수바마(60)에게도 교육은 희망이다. 그는 5년 전 전염병으로 부모를 잃은 일곱살, 다섯살짜리 손주 둘을 홀로 키운다. 농번기에 밭에서 풀 뽑는 일을 거들고 하루에 60루피(1500원)를 벌지만, 이제는 나이가 들어 그 일마저도 쉽지 않다. 내년이면 큰아이는 학교에 가야 한다. 무상교육 체제라지만, 교과서를 사고 1시간30분 거리의 학교에 보내는 데는 돈이 든다.
그래서 아이들의 학비를 댈 수 있는 소를 갖는 것이 간절한 소망이 됐다. 희망재단은 생계를 잇기 어려운 달리트 농가에 소를 사주고 있는데, 우유 등을 장에 내다 팔면 하루에 50루피 정도를 벌 수 있다. 송아지를 내다 팔면 대학 등록금도 가능하다. “나는 책을 읽지 못하지만 손자는 선생님이 됐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을 공부시키고 싶어요.”
사회복지단체 자노다얌은 프랑스·한국 등 사회복지단체의 지원을 받아 첸나이시 주변 40여곳의 달리트 빈민촌 가운데 20여곳에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다. 자노다얌의 이즈라엘 사무국장(45)은 “과거 대학에 가는 달리트 학생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요즘은 공부방에 다니는 1000여명의 학생들 중 5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고 있다”며 “공부방 사업이 카스트 제도가 없는 인도의 미래를 만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첸나이(인도)/글·사진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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