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엥겔스.
150년전 ‘영국 침공실패’ 논문서 지적
이후 소련군 철수 쓴잔…미군도 끙끙
이후 소련군 철수 쓴잔…미군도 끙끙
칼 마르크스와 함께 마르크시즘의 창시자로 불리는 프리드리히 엥겔스(1820~1895·사진)는 150여년 전 아프가니스탄은 “유럽의 이교도들에게 통치될 수 있는 곳이 아니다”고 예언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아프간 증파 결정이 나오면서 엥겔스의 이런 예언이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엥겔스는 1857년에 쓴 대영제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1838~1842) 실패에 대한 논문에서 “아프가니스탄은 지정학적 위치와 아프간인들의 독특한 성향으로 정치적 중요성을 가졌다”고 평가하면서 종족으로 나뉜 아프간인들의 독특한 성향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엥겔스는 아프간인들의 성향에 대해 “그들에게 전쟁은 자극이며 단조로움으로부터의 기분전환”이며 아프간인들은 “용기있고 대담하고 독립심이 강한 종족”으로 기술했다.
역사적으로 아프가니스탄은 무굴제국과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았지만, 종족 수장들의 봉건적 지배권이 행사됐던 곳이다. 엥겔스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아프가니스탄이 힌두스탄평원을 점령한 외부세력 침략의 통로가 돼 여러차례 외부의 침략을 받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런 점에서 인도를 식민화한 영국도 예외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1838년 아프간을 침공한 영국군은 진공 8개월 만에 카불을 점령하는 등 괴뢰정부를 세워 통치하려던 애초의 계획을 손쉽게 달성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군병력을 돌려보낸 직후 곳곳에서 봉기가 이어졌고, 끝내 고립된 영국군은 아프간인들과 굴욕적인 협상 끝에 철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나마 퇴각길에 몰린 4500여명의 군인과 1만2000여명의 민간인은 산악부족들의 공격을 받아 거의 몰살되는 비극을 겪어야 했다. 엥겔스는 이때의 상황을 “1812년 나폴레옹군의 모스크바 퇴각”에 비유했다.
영국의 아프간 침공 실패에 대한 엥겔스의 이 글은 <마크르스-엥겔스 선집> 18권에 실려있다. 엥겔스의 이런 역사적 교훈에 대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힌두쿠시 산맥을 넘었던 소련군 역시 1만4400명의 전사자와 5만3700명의 부상자를 안고 치욕적인 철수의 보따리를 싸야 했다.
류재훈 기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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