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진 보스턴대 명예교수
역사학자 하워드 진 타계
미국의 급진적 역사학자이자 실천적 지식인의 상징이었던 하워드 진(사진) 보스턴대 명예교수가 27일(현지시각) 숨졌다. 향년 88.
<에이피>(AP) 통신은 캘리포니아주를 여행하던 진이 심장마비로 숨졌다는 딸의 말을 전했다.
1980년 불과 5000부를 찍었던 그의 대표저서 <미국 민중사>는 기존 미국사의 시각과 방법론을 완전히 뒤바꿨고, 이후 미국 내 학교뿐 아니라 전세계 진보진영의 대안교재가 됐다.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한 콜럼버스의 인디언 사냥으로 첫 장을 시작하며, 진은 강자나 지배자가 아니라 인디언·흑인·여성·노동자 등의 저항과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라는 관점에서 역사를 새롭게 써나갔다. <오만한 제국>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등의 저서와 3편의 희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1922년 뉴욕에서 유대인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2차대전에 참전하며 전쟁에 환멸을 느꼈다. 컬럼비아대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스펠먼대에선 흑인여성 제자들과 함께 민권운동을 벌였고 1964년 옮긴 보스턴대에선 베트남 반전운동의 선두에 섰다. 은퇴 뒤에도 인권운동을 위해 거리 팻말시위를 마다하지 않았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같은 이마저 평가절하하는 그의 시각은 자유주의자들도 불편해했다. 자유주의 역사학자 아서 슐레진저 2세는 “그는 역사학자가 아니라 논객”이라 말했을 정도다. 진 스스로는“나는 객관적이거나 완벽한 역사책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 전통적 역사학에 대응하는 새로운 역사학의 첫 장을 쓴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일국주의가 강화된 2000년대, 진은 다시금 주목을 받았다. 2003년까지 100만부 팔렸던 <미국 민중사>는 2009년 200만부를 돌파했고, 지난해 미국의 <히스토리 채널>은 책을 재구성한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맷 데이먼, 브루스 스프링스틴 같은 스타들이 작품이나 앨범에서 진에 대한 존경의 뜻을 바쳤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등을 강력히 비판해온 그는 지난해 말, 노엄 촘스키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 등과 함께 이명박 정부에 한국 내 반민주적 탄압 중단을 요구하는 공동성명에 참여하기도 했다. 진의 마지막 글은 지난주 <더 네이션>에 실렸다. 그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정책을 비판하며 ‘평범한 대통령’이라고 이름 붙였다. “시민운동이 이 방향을 바꾸지 않는 한 ‘평범한’은 ‘위험한’이 될 것이다.” 촘스키 교수는 이날 “미국 지성과 도덕 문화에 놀라운 기여를 했다”고 그를 기렸다.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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