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국 순방 첫날 카이로 방문
만수르 대통령·시시 국방 등 만나
곧바로 사우디행…관계회복 나서
만수르 대통령·시시 국방 등 만나
곧바로 사우디행…관계회복 나서
“나는 이집트의 합법적 대통령이다. 당신들은 나를 재판할 권리가 없다.”
4일 이집트 카이로 동부 법정에 선 무함마드 무르시 전 이집트 대통령은 재판정에서 이렇게 선언하며, 쿠데타 세력이 주도하는 이 ‘정치적’ 재판이 무효라는 논리를 폈다고 <비비시>(BBC)가 보도했다. 이집트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적 선거로 대통령에 선출되었던 그는 지난 7월 군부 쿠데타로 축출된 지 넉달 만에 이날 ‘시위대 살해’ 혐의로 자신의 정치적 배경인 이슬람형제단 주요 지도자들과 함께 법정에 섰다. 법정 밖에선 무르시 지지자들이 시위를 벌였다.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과도정국을 사실상 주도하고 있는 이집트 군부는 재판에 앞서 2만여명의 치안병력을 배치해 삼엄한 경계령을 폈다. 무르시는 죄수복을 끝까지 거부한 채, 평상복 차림으로 법정에 나왔다.
이 재판이 시작되기 하루 전날인 3일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카이로를 방문했다. 무르시 축출 이후 미국 정부 고위인사의 첫 이집트 방문이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중동 등 8개국 순방의 첫 일정으로 케리 장관이 이집트를 택한 것은 미국의 중동 외교에서 이집트가 갖는 무게를 드러낸다.
영국 <비비시>(BBC)는 이날 “케리 장관이 카이로에서 6시간 동안 머물며 아들리 만수르 과도정부 대통령과 나빌 파흐미 외무장관은 물론, 무르시 대통령을 축출한 군부 실세인 압둘팟타흐 시시 장군 등 과도정권의 핵심 인사 대부분을 만났다”며 “그는 이집트에서의 폭력 종식과 완전한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촉구하는 한편 미국이 현 과도정권과 협력해나겠다고 약속했다”고 전했다. 향후 헌법 개정과 민주적 선거라는 ‘형식적’ 절차를 거쳐 탄생할 군부 주도의 새 이집트 정권이 미국의 중동 외교 및 대테러 정책에 부응하는 한 협력 관계에 변함이 없으리라고 사실상 확인한 셈이다. 미국은 이집트 군부 쿠데타 논란 및 친무르시 시위대 폭력 진압과 관련해, 이집트에 대한 군사 지원을 유보했고 최근 5억달러 상당의 아파치 헬기 인도 등 예정된 지원 일정을 중단했다. 하지만 케리 장관은 이집트 기자한테서 이와 관련한 질문을 받고 “(해당 조처는) 징벌적 조처가 아니다”라며 의미를 축소했다고 <뉴욕 타임스>가 전했다.
케리의 이번 중동 순방은 결국 이집트 차기 정권과의 관계 설정 및 이란 핵문제 해결, 시리아 화학무기 제거와 내전 종식 등 최근 새롭게 떠오른 중동의 현안에 외교력을 집중하는 한편, 미국의 중동 정책에 불만을 품은 사우디아라비아 등 기존 맹방들을 다독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는 2011년께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 ‘아시아 귀환’ 등을 선언했으나, 2013년 두번째 임기가 시작되자 사실상 ‘중동 외교로의 재회귀’로 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케리 장관은 이집트에 이어 곧바로 사우디로 향했다. 그는 4일 사우디의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국왕을 예방했으며, 기자들과 만나 “사우디와 미국의 관계는 이상이 없다”고 밝혔다고 <에이피>(AP) 통신이 전했다.
이번 방문엔 시리아 내전과 이란 핵문제로 소원해진 사우디와 관계를 회복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이란과 중동지역의 주도권 다툼을 벌여온 사우디는 최근 미국과 이란 관계가 훈풍을 타는데다 시리아 평화 회담으로 이란의 지원을 받는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이 힘을 얻는 분위기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왔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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