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녹여 보습으로.” 2012년 7월 미국 평화운동가 마이클 월리(왼쪽부터), 미건 라이스 수녀, 그레그 보어체 오베드가 반핵·군축을 촉구하는 구호가 적힌 펼침막을 들고 있다. ‘트랜스폼 나우 플라우셰어스’ 제공
2년전 핵무기 제조 군사시설 들어가
“남은 삶 감옥서 보내 더없는 영광”
“남은 삶 감옥서 보내 더없는 영광”
평화운동에 열정을 다해 온 80대 수녀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미국 테네시주 녹스빌 연방지방법원은 18일 공공시설물 파손 등의 혐의로 유죄가 확정된 미건 라이스(84) 수녀에게 징역 35개월형은 선고했다고 <로이터> 통신 등 외신들이 일제히 전했다. 라이스 수녀와 함께 기소된 동료 활동가 마이클 왈리(64)와 그레그 보어체-오베드(58)는 징역 5년2개월형에 처해졌다. 세 사람 모두 항소를 포기했다.
‘트랜스폼 나우 플라우쉐어’란 평화단체 소속인 이들 세사람이 ‘범행’에 나선 때는 지난 2012년 7월28일 동이 틀 무렵, 장소는 테네시주 오크리지에 있는 ‘와이(Y) 12 국가안보단지’다. 4중으로 설치된 철조망을 절단기로 하나씩 자르고 단지 안으로 들어간 이들이 한참을 걸어 도착한 곳은 핵무기 제조용 고농축우라늄(HEU) 저장시설이었다. 이 시설에는 핵탄두 1만개를 만들 수 있는 고농축우라늄 400t이 보관돼 있다.
미리 준비해 간 망치로 건물 외벽을 몇차례 내리친 그들은 평화운동가들이 체혈한 피를 뿌렸다. 이른바 ‘반핵·군축 직접행동’이다. 이어 스프레이 페인트로 평화를 염원하는 구호를 벽면에 적었다. “화 있을진저, 너희 피의 제국이여! 정의의 열매는 평화이니,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위해 힘쓰라.”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핵무기가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와이 12 국가안보단지’는 미국에서 가장 경비가 삼엄한 보안시설의 하나로 꼽힌다. 그럼에도 이들 3인조가 발각되기까지는 2시간 이상이 걸렸다. 당시 <워싱턴포스트>는 “무전기를 손에 쥔 경비요원이 나타나자 이들은 빵을 건네주고는, 성서·촛불·장미꽃을 꺼내 들고 평화를 염원하는 노래를 불렀다”고 전했다.
왈리는 베트남전 참전군인 출신이다. 보어체-오베드 역시 군 출신으로 일찌감치 평화운동에 가담해왔다. 가톨릭 성자예수회 소속인 라이스 수녀는 1962년부터 40여년 동안 나이지리아와 가나에서 중등교사로 일했다.
라이스 수녀는 1980년대부터 방학을 맞아 귀국할 때마다 반핵·평화운동에 적극 참여해왔다. 또 지난 1998년엔 남미 군사독재자 양성소로 악명을 떨쳐온 조지아주 포트 베닝의‘스쿨 오브 아메리카’ 폐쇄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다 체포돼 6개월 간 복역하기도 했다. 그는 18일 선고공판에서 “남은 삶을 감옥에서 보내는 건 더없는 영광”이라고 말했다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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