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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아프간 첫 민주적 정권교체 D-2…‘변화의 바람’은 감감

등록 2014-04-02 20:32수정 2014-04-02 21:26

카르자이 대통령 3선 제한으로 퇴임
압둘라-가니, 25% 안팎 1·2위 각축
과반 어려워 5월 결선투표 치를 듯
군벌난립·경제 침체 등 과제 산적
미국 침공 13년…“통합국가 멀어”
“미군이 최종 철수 뒤에도 남아 있도록 하는 워싱턴과의 조약에 나는 서명하지 않겠습니다.”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은 지난달 15일 의회 연설에서 한때 밀월관계였던 미국과 선긋기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아프간군 훈련과 탈레반 견제를 명분으로 미군 1만명 가량을 남기는 안보조약에 서명하지 않겠다고 강조한 것이다.

그는 2001년 미국의 아프간 침공으로 탈레반 정권이 축출된 뒤 두 차례 대통령을 연임했지만, 3선을 금지하는 헌법 때문에 5일 치러지는 대선에는 출마 길이 막혔다. 미국의 아프간 점령 초기, 카르자이는 아프간의 복잡한 정치 상황을 막후 조율하면서 서방의 열광적 지지를 받았다. 아프간은 파슈툰족 42%, 타지크족 27%, 하자라족 9%, 우즈베크족 9% 등 주요 민족만 7개로 인적 구성이 복잡하고, 탈레반과 지방군벌 등 무장조직이 지역별로 난립해 권력을 분점하고 있다.

하지만 카르자이 정권과 서방의 밀월은 계속되지 않았다. 서방은 아프간 경제 재건에 써야할 원조금을 빼돌리는 카르자이 정권의 무능과 부패를 불신했고, 카르자이 정권 역시 탈레반과의 전쟁에서 미군 오폭 등으로 민간인 희생이 커지자 국민적 지지를 잃지 않기 위해 어차피 철군할 미국에 각을 세울 필요를 느꼈던 탓이다. <가디언>은 “미국 정책입안자들과 카르자이의 관계는 결혼과 비슷해서, 좋고 나쁠 때를 오가다가 마침내 폭언이 오가는 이혼 단계에 이르렀다”고 짚었다.

특히 카르자이는 퇴임 뒤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탈레반과 평화협정을 맺으려 했으나 협상은 지지부진하다. 지난달에도 탈레반은 주요 대선 후보 집에 총격을 하고, 선관위 사무실에 연쇄테러를 하는 등 카불 정부에 공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1996년 탈레반이 카불을 장악할때 소련의 꼭두각시 정권으로 평가받았던 무하마드 나지불라 전 대통령이 거세를 당하고 목이 매달렸던 역사가 있다. 카르자이가 어차피 철군할 미국과의 밀월에 목을 매지 않는 이유다.

하지만 아프간 역사상 선거를 통한 첫 정권교체를 이룰 이번 대선의 후보들은 일단 당선되면 미국과의 안보조약에 서명하겠다고 밝혀, 카불 정권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최우선 순위를 뒀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25% 안팎의 비슷한 지지율을 기록하며 1·2위를 다투는 후보는 압둘라 압둘라 전 외무장관과 아슈라프 가니 전 재무장관이다. 3위는 8% 안팎의 지지율을 기록하는 잘마이 라술 후보다. 아프간 헌법은 1차 투표에서 과반을 넘는 후보가 나오지 않으면 결선투표를 하도록 규정해, 현재로선 5월에 2차 투표를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압둘라 후보는 안과 의사였지만 반탈레반 부족 연합체인 ‘북부동맹’의 전설적 지도자로 오사마 빈 라덴 세력에 암살당한 아흐마드 마수드 장군의 측근 출신이다. 소련의 아프간 침공 때 맞서싸운 무자헤딘 출신이기도 하다. 최대 종족인 파슈툰족과 제2의 민족인 타지크족의 혼혈이라, 타지크족의 지지가 높지만 순수 파슈툰족 출신인 다른 유력 경쟁자들보다 불리할 수 있다는 점이 변수다. 그는 카르자이 과도정부 초기엔 외무장관을 지냈지만 지난 8년간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고, 2009년 대선에서 카르자이의 선거 부정을 비난하며 결선투표 거부를 한 이력도 있다.

파슈툰족인 가니 후보는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국제관계학과 인류학으로 학위를 딴 뒤 세계은행에서 10년간 근무하고, 카르자이 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낸 테크노그라트다. 그는 인권과 법치를 강조하고 있지만, 이번에 전쟁범죄와 부패 혐의가 짙은 우즈베크족 군벌 출신인 압둘 라시드 도스툼과 손을 잡았다. 도스툼은 2009년 대선 땐 카르자이와 손잡고 요직을 역임하며 정권의 이익을 나눠가진 인물이다. 라술 후보도 파슈툰족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의학을 공부한 뒤 카르자이 정부에서 외무장관 등 고위직을 역임했다. 그는 카르자이의 오랜 친구로 꼽히며,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가 사퇴한 카르자이의 형 카윰의 공개 지지선언을 등에 업고 있다.

이처럼 대선 후보들이 서방 원조에 기댄 아프간 경제를 좀먹던 카르자이 정권의 부패 인사들과 합종연횡을 하고 있어 차기 정권에 큰 기대를 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10명의 후보 가운데 8명이 파슈툰족 출신이다. 게다가 유력 후보인 가니와 라술은 카르자이를 “영향력 있는 사람”이라고 공개적으로 언급하며 추후에도 밀월관계를 예고한 상황이다.

유엔 아프간지원임무단(UNAMA)의 전략홍보 책임자였던 마수메 토르페는 <가디언> 기고에서 “대선 후보들의 면면을 볼 때 아프간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며 “다가오는 아프간 대선은 역사적 사건임에는 틀림없지만 후보군들의 모습은 다시 파벌주의와 과거지향을 가리키고 있다”고 짚었다. 그는 또 “이런 결과는 카르자이 내각의 재탕으로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군벌과 탈레반의 영향력을 높이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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