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카라·이스탄불 등서 반정부시위
노조 “광업 민영화가 소마학살 주범”
대선 출마 노리던 에르도안 위기
노조 “광업 민영화가 소마학살 주범”
대선 출마 노리던 에르도안 위기
터키 역사상 최악의 탄광 참사로 반정부 시위와 총파업 선언이 번지는 등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와 집권 정의개발당이 최대 정치위기에 직면했다. 현 정부는 권위주의 통치와 잇단 부패·축재 스캔들로 반발을 산데다 국민 안전을 담보로 수익극대화만 좇는 신자유주의적 경제개발로 참사를 낳았다.
<로이터>는 15일 “역사상 최악의 탄광 참사로 기록될 사고가 터지면서 여러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저항 시위가 일어났다”며 “격분한 터키인들이 에르도안 총리에게 야유를 퍼붓고 있다”고 전했다. 참사 다음날인 14일 소마 도심은 물론 수도 앙카라와 이스탄불 등에서 수천명의 시위대가 몰려나와 경찰과 충돌을 빚었다. 이날 낮 앙카라에서는 800여명의 대학생 시위대가 에너지 분야 민영화를 무리하게 밀어붙인 데 항의해 정부 에너지 부처로 행진을 시도했으나 경찰이 최루탄과 물대포를 쏘며 막아섰다. 이후 앙카라 도심에서는 수천명이 항의 시위에 나서 경찰과 충돌했다. 이스탄불에서도 참사를 초래한 소마 탄광 업체 본사 인근과 도심에서 시위가 이어졌다. 현지의 <휘리예트 데일리 뉴스>는 시위대가 사고 업체 건물 벽에 “살인자”라고 쓰고 연좌 시위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이들은 에르도안 총리와 장관이 이전 탄광 사고 때 광부들의 죽음에 대해 ‘이런 직종의 운명’ ‘화상자국 없이 아름답게 죽었다’는 망언을 했던 점을 겨냥해 “그들은 아름답게 죽지 않았다. 이것은 운명이 아니라 살인이다”라는 펼침막을 내걸었다. 터키 경찰은 지난해 반정부 시위의 구심점이 된 장소인 이스탄불 도심의 게지공원을 미리 폐쇄하는 한편, 시위대에 최루탄과 물대포로 대응했다.
터키 주요 노조들은 15일 최악의 참사에 항의해 하루 동안 총파업을 선언했다고 <비비시>(BBC)가 전했다. 공공노조 연맹은 성명서를 발표해 “민영화 정책을 추구하는 이들이 비용을 아끼기 위해 노동자들의 생명을 위협했으며, 이들이 소마 대학살을 저지른 범죄자”라고 비판했다.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조짐이다. 에르도안 총리는 2003년 총리에 취임한 뒤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요구한 신자유주의 경제개혁 처방에 따랐고, 개발독재에 가까운 통치 스타일을 보여줬다. 최근에는 젊은층이 민주주의 확대를 요구하는데도 권위적 이슬람주의를 앞세워 여론의 반발을 샀다. 지난해 말에는 에르도안 총리가 자신의 아들과 거액의 현금을 옮길 것을 논의하는 대화가 도청된 파일이 흘러나오면서 비리·축재 스캔들로 번졌다.
이번 참사는 에르도안 총리에게 또다른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1999년 1000여명이 숨진 대지진과 2001년 외환위기로 민심을 잃은 공화인민당을 2002년 말 총선에서 꺾고 집권했다. 이후 높은 경제성장률이란 치적을 앞세워 2007년과 2011년 총선을 승리로 이끌며 터키 역사상 최초의 3선 총리가 됐다. 현재 터키 헌법으로는 총리를 세차례 이상 연임할 수 없기 때문에 그가 올해 8월에 대선에 출마할 것이란 얘기가 파다하다. 개헌으로 대통령 선출을 직선제로 바꾸었고, 총리중심 내각책임제를 사실상 대통령중심제로 바꿀 뜻을 비치는 발언도 여러 차례 했기 때문이다.
<비비시>는 “에르도안 총리가 이번 비극을 자신에 대한 평가 시험대로 인식할 것”이라며 “그는 이전 정권이 1999년 터키 지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서 선거에서 졌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짚었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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