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당의 사디크 칸(사진 오른쪽)
파키스탄 출신 버스운전사 아들
노동당 후보로 정치명문가 골드스미스 꺾어
교통요금 동결, 싼 주택 공급 공약
칸, “나처럼 누구나 런던시장 될 수 있다”
노동당 후보로 정치명문가 골드스미스 꺾어
교통요금 동결, 싼 주택 공급 공약
칸, “나처럼 누구나 런던시장 될 수 있다”
5일(현지시각) 치러진 영국 지방선거에서 파키스탄계 이민자 가정 출신의 무슬림(이슬람교도)인 노동당의 사디크 칸(45) 후보가 런던시장에 당선됐다. 무슬림 런던시장은 처음이다. 비싼 주거비와 교통비에 시름하던 시민들이 주택 공급과 교통비 동결 정책을 내놓은 칸을 선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칸은 당선 발표 직후 “나와 같은 누구나도 런던시장이 될 수 있다”며 모든 런던시민을 위한 시장이 되겠다고 말했다.
이날 선거에서 야당인 노동당 후보 칸은 131만표를 얻어 99만표를 얻은 집권 보수당 후보 잭 골드스미스(41)를 제치고 당선됐다고 등 현지 언론들이 7일 보도했다. 칸은 1차 개표에서 44.2%로 1위를 차지했지만, 과반을 확보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칸과 35%를 얻은 2위 골드스미스를 뺀 남은 후보들을 1순위로 선택한 투표의 2순위 지지자를 합산한 2차 집계에서 칸 후보가 최종 당선됐다.
칸은 파키스탄계 이민자의 아들로 런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버스 운전기사였고 어머니는 재봉사였다. 7남1녀 중 다섯째로 공립학교를 다니면서 청소년 시절부터 신문배달도 하고 여름철에는 공사 현장에서 일하기도 했다. 반면 패배한 골드스미스 후보는 독일계 유대인 명문가의 일원이자 금융재력가의 아들로 태어난 전형적인 ‘금수저’다. 개인 자산이 2억파운드(약 3600억원)로 추정되고, 재혼한 부인도 금융 명문가인 로스차일드 가문 후손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하원의원과 유럽의회 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칸은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치과의사를 꿈꿨으나, 그의 언변을 눈여겨본 교사의 추천으로 북런던대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인권변호사였던 그는 2005년 총선에서 당선되면서 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고든 브라운 정부가 칸을 교통장관으로 발탁해, 샤히드 말릭 전 국제개발부 장관에 이어 두번째 무슬림 장관으로 기록됐다. 2015년 9월 노동당 런던시장 후보로 선출됐다.
특히, 보수당 런던시장 후보로 나선 독일계 유대인 잭 골드스미스가 칸을 향해 ‘이슬람 극단주의자’라는 색깔을 덧칠하면서, 칸이 인종과 종교의 한계를 극복하고 런던시장이 될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됐다. 골드스미스는 칸이 “인권변호사 시절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변호했다”고 주장했고,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노동당 (런던시장) 후보가 우려스럽다”고 공격했다. 하지만 오히려 보수당에 “인종주의”라는 비판이 쏟아지는 등 역효과를 불렀다.
정치권에서는 시장 후보자의 종교를 문제 삼았지만,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주거비와 교통비 등 현실적인 이슈가 관심사였다. 실제로 칸과 골드스미스가 가장 극명하게 갈린 지점도 런던 주택 공급과 지하철 요금 정책이다. 중도 좌파 사회민주주의자로 분류되는 칸은 서민들이 구매할 수 있는 저렴한 주택을 더 많이 지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골드스미스는 주택 건설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반대했다. 칸은 4년간 런던 지하철·버스 요금을 동결하겠다고 했지만, 골드스미스는 인구 증가에 대처하기 위한 재원 마련이 어려워진다며 난색을 표했다. 제이슨 베이커(27)는 5일 런던 해크니에서 <한겨레> 기자와 만 “칸이 무슬림이라거나 파키스탄 출신 이주민이라거나 하는 것들이 중요하게 보이지 않았다. 골드스미스 쪽이 그런 카드를 사용하려고 했지만, 런던은 이미 너무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도시라 큰 이슈가 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민 맥도널드(55)는 “딸이 내년에 대학에 갈 예정인데, 런던에 있는 대학에 가서 혼자 산다면 절대로 주거비를 부담할 수 없는 수준”이라며 “런던 인구가 늘고 있는데, 임대료를 낮추거나 주택을 더 공급하는 정책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H6s런던/황금비 기자,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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