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무슬림 런던시장으로 당선된 노동당의 사디크 칸이 7일 서더크 대성당에서 열린 취임 서약식에서 두손을 모으고 웃으며 지지자들의 환대에 반응하고 있다. 칸 시장은 분열을 넘어 통합을 선택해 준 지지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런던/ AFP 연합뉴스
“런던은 공포 대신 희망, 분열 대신 통합을 택했다”
첫 무슬림 런던시장의 첫번째 메시지는 희망과 통합이었다. 5일 치러진 영국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사디크 칸(45)은 6일 수락 연설에서 “런던이 공포를 넘어 희망을, 분열을 넘어 통합을 선택한 게 자랑스럽다”며 “공포는 우리를 더 안전하게 만들지 못하고 우리를 더욱 약하게 만들 뿐이며, 공포의 정치는 우리 도시에서 환영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칸 시장은 7일 런던 서더크 대성당에서 열린 취임 서약식에서도 “모든 런던 시민을 대표하는 시장으로서 모든 공동체와 시의 각 부분을 대표해 나가겠다”고 거듭 약속했다.
기독교인들이 1000년 넘게 예배를 드렸던 서더크 대성당에서는 지지자들과 런던 고위 관리들이 기립박수로 무슬림 시장을 맞이했다. 1990년 기사 작위를 받은 국민배우 이언 매컬런(<반지의 제왕> 마법사 간달프)은 대성당 입구에서부터 그를 맞았다. 맥컬런은 “정치와 무관하게 무슬림 시장의 취임이 다른 어떤 대안보다 좋아 보인다”고 말했다.
칸은 영국 런던의 투팅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치과의사가 되려 했으나, 토론에서 두각을 나타낸 그를 눈여겨 본 교사의 추천 등으로 법학을 택했다. 그는 2005년까지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다. 94년 동료 사무변호사이자 같은 버스 운전기사의 딸 사디야 아흐메드와 결혼해 두 딸을 뒀다.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칸에게 ‘인종차별’은 익숙한 경험이었다. 정치주간지 <뉴스테이츠맨>은 칸의 말을 인용해 “버스 승객들은 턱수염을 길렀던 칸의 아버지를 ‘파키 산타’라고 조롱했고, 칸은 에이에프시(AFC) 윔블던 축구팀을 응원 갔다가 팬들로부터 인종차별 욕설을 들은 뒤 다시는 윔블던을 응원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하지만 칸은 일간 <데일리메일>에서 “16살과 14살 딸들은 나와 아내가 자랐던 곳에서 컸지만, (이젠) 인종차별적인 말을 들은 적도 인종차별 피해자가 된 적도 없다”며 “우리가 이뤄낸 진보를 보여준다”고 강조한 바 있다.
실제로 유럽연합(EU) 여러 국가들에서 반무슬림 극우정당이 득세하고 있지만, 인구 4분의 1이 외국계이며 인구 8분의 1이 무슬림인 ‘코스모폴리탄 도시’ 런던은 무슬림 시장을 선택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런던은 파키스탄계 버스 운전사의 아들인 칸에게 56.8%를 몰아줬다. 집권 보수당 후보로 나선 독일계 유대인 금융재벌의 아들인 잭 골드스미스는 43.2%를 득표했다. 종교와 인종을 빌미로 칸에게 ‘이슬람 극단주의자’ 혐의를 덧씌우려던 보수당의 ‘네거티브 선거 캠페인’이 런던에서는 통하지 않았던 셈이다.
칸은 “우리는 내내 포지티브 캠페인을 벌였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실제로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칸이 일찌감치 정책을 내놓고 지속적으로 홍보했던 주거비와 교통비 이슈가 주된 관심사였다. 제이슨 베이커(27·남성)는 5일 런던 해크니에서 <한겨레> 기자와 만나 “칸이 무슬림이라거나 파키스탄 출신 이주민이라거나 하는 것들이 중요하게 보이지 않았다. 골드스미스 쪽이 그런 카드를 사용하려고 했지만, 런던은 이미 너무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도시라 큰 이슈가 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민 맥도널드(55·여성)는 “딸이 내년에 대학에 갈 예정인데, 런던에 있는 대학에 가서 혼자 산다면 절대로 주거비를 부담할 수 없는 수준”이라며 “런던 인구가 늘고 있는데, 임대료를 낮추거나 주택을 더 공급하는 정책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칸과 골드스미스가 가장 극명하게 갈린 지점도 런던 주택 공급과 지하철 요금 정책이다. 스스로 공공주택 프로그램의 수혜자이기도 했던 칸은 서민들이 구매할 수 있는 저렴한 주택을 더 많이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골드스미스는 주택 건설을 위축시킬 수 있다며 반대했다. 칸은 4년간 런던 지하철·버스 요금을 동결하겠다고 했지만, 골드스미스는 인구 증가에 대처하기 위한 재원 마련이 어려워진다며 난색을 표했다.
전정윤 기자, 런던/ 황금비 기자
ggum@hani.co.kr